박근혜 당선자가 아직 취임하지는 않았지만 새누리당 의원들은 당선자와 긴밀하게 조율하면서 세제개편을 추진할 것이다. 그러기에 현재 추진되고 있는 작업도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세제개편이라기보다 박근혜 정부의 첫 개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2013년부터 감당해야 하는 경제상황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어려울 수 있다. 국민들과 정파들은 정서적으로, 경제적 이해관계로 나눠져 있다. 선거에서 박 당선자를 지지하지 않은 절반의 국민들에게 심리적 상실감은 깊게 남아 있다.
신 정부의 조세정책은 당선자가 후보 시절 제시한 공약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선 문재인 후보의 민주당 진영이 내세운 공약과 내용을 공유하는 부분을 먼저 실현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다. 주식 양도차익과세의 범위 확대,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의 하향조정, 파생상품 과세의 확대, 그리고 비과세·감면의 축소가 양 진영의 공약이 내용을 공유하던 부분으로써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것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새누리당 세제개편안은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을 2천만원으로 하향조정하고 비과세·감면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 듯하다. 방향은 적절하다. 그러나 그 정도의 세제개편으로는 현실적으로 복지제도 확충을 위해 연간 필요한 재원 27조원의 십분의 일도 기대하기 어렵다.
당선자는 후보시절 소득세 및 법인세 분야의 세율인상에 대하여는 말을 아꼈다. 그러나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으로서 복지분야의 공약 내용을 충실하게 실현하자면 다른 대안은 없어 보인다.
문재인 후보는 소득세 최고세율과 종합부동산세 적용범위를 확대하고 법인세율을 올리는 방식을 통해 전체 경제의 조세부담률을 2% 올리는 정도로 재정을 확대하겠다고 하여 직접세 분야를 선택했었다. 이와 달리 간접세 분야를 택한다면 부가가치세의 세율 인상이 구체적 대안이 된다. 그러나 부가가치세는 그 세부담이 역진적이어서 저소득층에게 상대적으로 부담이 크다. 기업이나 개인사업자들은 또한 부가가치세율의 인상을 공급가격 인상을 위한 좋은 핑계거리로 이용할 것이기 때문에 세율 인상이 야기하게 되는 물가상승 효과는 단순한 계산상의 효과보다 실제로 훨씬 크게 증폭될 것이다. 때문에 서민들의 복지 증진을 위한 재원조달방식으로서 부가가치세율 인상은 분배적으로는 단지 조삼모사에 해당하는 사례일 뿐이며 물가효과로 인해 전체 경제적으로도 비효율적이다. 때문에 정치·사회적으로 어렵더라도 정공법으로 가야 한다. 과감하게 문재인 후보가 공약한 방식대로 소득세와 법인세 분야에서 증세를 시도하는 것은 당선자가 표방하는 국민통합의 취지에도 부합될 것이다.
박근혜 당선자는 필요한 경우 제한적으로 국채 발행을 통해 재원을 조달하겠다는 언급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국가 채무가 국제 수준에 비해 그다지 높은 수준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국채 발행은 단기적 경기변동에 대한 대책이지, 예산 지출구조의 장기적 변화를 감당할 수 있는 방안은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정부 부채를 갚기는커녕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이자지출 수준만 해도 매년도 예산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들 나라에서 정부 부채가 구조적인 문제로 자리잡게 된 것은 경제학의 양대 산맥인 공급중시 경제학과 수요중시 경제학, 그리고 이를 추종한 정부들이 쌍끌이로 같이 이뤄낸 작품이다. 공급중시 경제학과 보수당 정부는 세금을 줄이고, 수요중시 경제학과 중도진보적 정부는 사회보장성 지출을 늘리면서 각각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물론 미국의 부시 정부처럼 세금은 줄이면서 국방비 지출은 늘려서 두겹으로 재정적자에 기여한 경우도 가끔 있다.
단기적 경기침체에 대해 정부지출을 늘려서 경기회복와 성장을 이루자는 재정정책은 분명 합리적인 근거를 가진 것이다. 다만 경기가 호황국면에 들어가면 지출보다 세금을 더 거둬 정부 부채를 줄여 나가서 중장기적으로는 균형재정을 이뤄야 한다. 문제는 불경기에 확장시킨 재정을 호황기에 수습하는데 지구상의 대부분의 정부가 실패했고 결과적으로 단기적인 재정 확장이 누적돼 장기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국가채무로, 예산의 구조적인 문제로 남는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복지 지출의 증가는 단기간의 지출 증가가 아니라 지출구조의 장기적인 변화를 수반하는 것으로, 이에 대한 재원조달 방안으로서 박근혜 정부가 구상하는 국채 발행은 전혀 적절하지 않다는 점이다.
신 정부는 이번의 세법 개정에서 비과세·감면의 축소를 통한 세수 확보에 기대를 거는 듯하다. 그러나 오랜 연구들과 지금까지 정부가 감면을 축소하기 위해 수행한 노력들을 종합해 보면 이 분야에서 달성될 수 있는 세수 확보는 초라한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비과세·감면의 축소보다는 지하경제의 양성화에 더 힘쓰는 것이 사회정의에 더 부합하며 세수 확보의 가능성도 크다.
과세에 포착되지 않는 현금경제, 차명거래·차명자산, 불법소득, 역외탈세 등을 양성화하기 위해 과세당국에 금융거래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허용함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지하경제 양성화는 한단계 크게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이 고액현금거래보고(CTR), 혐의거래보고(STR) 등의 자금세탁 관련 금융자료 들을 이미 수집·확보하고 있기에 그 정보를 과세당국과 공유하는 문제는 비교적 용이한 것이다. 외국의 국세청 중 이러한 금융자료에 제한 없이 접근하는 나라들도 적지 않다.
조세개혁을 공약에 수용하는 단계와 입법화하는 단계는 크게 다른 것이다. 어떤 세목이던간에 세율의 인상을 입법화하는 것은 사회적인 저항을 유발할 것이다. 수년전의 종합부동산세에 대한 반응을 떠올려 보라. 때문에 공약 입법화 단계에서는 구체적인 비전의 제시가 필요하다. 새 정부는 세금을 왜 더 필요로 하는지, 세금을 더 걷어서 어디에 사용하려고 하는지, 그것이 국민들에게 어떤 혜택으로 돌아가는지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설득해서 국민들의 동의를 얻어가야 한다. 그리고 이 내용들의 입법화는 5년 정도의 기간에 나눠서 실현한다는 중기적인 로드맵을 갖고 추진해 나가야 한다. 단기적으로 실현하기에는 사회가 수용하기 어렵고 장기적인 실현이란 임기가 지나가는 것을 의미하므로 공약 회피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