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물리적 수명보다 경제적 수명이 훨씬 길었다. 일생동안 하나의 기술이나 지식만 있어도, 소득 획득 활동에 구애를 받지 않았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기술수준이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경제적 수명이 물리적 수명보다 짧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일생동안의 소득 획득에 어려움을 겪는 인구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소득불평등 확대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생애주기소득 불평등도에도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추측된다.
소득불평등도의 확대 또는 빈곤문제에 대응한 정책방안을 논함에 있어서는 대증요법적인 정책 제안도 중요하지만, 근본원인에 대한 정책방안 개발도 매우 중요하다. 소득 격차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문제는 일조일석에 해결하기 어려운 만큼 좀더 장기적 관점에서 오랫동안 정책 개발을 위한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작금의 소득불평등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복지정책방안을 논함에 있어, 흔히 국제비교를 통해 우리나라의 위치를 가늠해 보면서, 정부 정책방향에 대한 점검 및 수정·보완방향 등을 제시하곤 한다. 대부분의 경우 복지정책의 기본관점은 사후적 복지에 방점을 두고 있다. 소득불평등의 확대 또는 빈곤의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거나 최소화하고자 하는 예방적 복지 차원에서의 논의는 찾기 어렵다. 보건학적 관점에서 볼 때, 질병이 발생한 후 사후적인 치료는 비용도 많이 들고 효과도 상대적으로 낮은 반면, 백신 접종 등과 같은 예방적 치료는 비용도 적게 들고 효과도 상당히 높다. 이런 원칙은 분배문제, 복지문제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우리 주변에서는 '복지'라고 할 때 사후적 복지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짙은 반면, 예방적 복지에 대해서는 개념조차 정립돼 있지 않은 듯해 매우 안타깝다. 예방적 복지에 대한 개념 정립과 정책 개발이 절실하며, 장기적으로는 훨씬 적은 비용과 작은 고통으로도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먼저 복지정책을 몇 가지 카테고리로 나눠 살펴보자. 노인빈곤 문제와 관련해서는, 대부분 부족한 가처분소득을 보충해 주는 방식의 소득지원정책이 전개되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소득부족분이 덜 발생하도록 하는 근본적인 대비책을 강구하기 위한 정책제언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정년연장, part-time job 활성화, 부동산시장 안정화, 금융시장 활성화 등도 얼핏 노인정책과 관련이 없을 듯 보일지 모르지만 노인들의 경제력 지지를 위해서는 시장에서의 문제도 연계할 필요가 있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인구 고령화 속도가 완만해 상대적으로 과도기적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 속도가 빨라서, 공적연금 등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인구가 매우 많다. 경제발전단계, 소득수준, 정부의 재정능력 등을 종합해 보면 사각지대에 놓인 인구를 충분히 지원할 수 있을 정도로의 여력이 크지 않다. 그러므로 시장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면 근본적 해결이 어렵거나 후손들에게 과중한 빚을 물려줄 수 있다.
저소득 빈곤문제와 관련해 노동시장 정책의 강화가 필요하다. 산업구조 고도화를 위한 재교육·훈련 강화 등이 매우 중요한 정책방향이다. 다만 한가지 유의해야 할 것은 산업정책과 복지정책의 충돌이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중소기업 지원정책과 실업정책·노동정책간에 상충되는 점이 있다. '산업 연수생' 제도의 적극적 활용은 경쟁력이 미미한 중소기업을 살리는 데 효과적이지만, 대신 국내의 단순 기술노동자들의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다.
골목상권을 보호하고자 대형마트 강제 휴업 등의 제도를 운용하고 있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영세사업자들을 보호하는 것인지는 알기 어렵다. IMF 외환위기이후 구조조정을 통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무방비 상태로 시장에 쏟아졌다. 우리나라 경제수준과 재정능력 등을 생각할 때 사회안전망으로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크게 초과했기 때문에, 복지정책 대신 산업정책을 통해 창업·자영업을 적극 지원했다. 이는 화물자동차 운송업, 유통업(골목상권) 등 영세자영업자들의 만성적인 공급 과잉현상을 초래했다. 수익률은 낮은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기 때문에 도산율이 매우 높다. 이는 사업 실패에 따른 개인부채 증가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자영업자 비용이 여타 선진국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이 이를 반증해 준다. 자영업자들의 여건이 어려운 것은 경기가 좋지 않은 것도 있지만 적정 수에 비해 지나치게 자영업자 수가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쟁력없는 부문을 지원하기 위해 밑빠진 독에 물 붓기식의 막연한 지원보다 자영업자 수를 줄이는 대신 피고용자를 늘리는 식의 대형화 정책이 중·장기적으로 더 효과적인 정책 방향이 아닌가 싶다. 자영업은 기본적으로 모든 리스크를 자신이 짊어져야 하는 반면, 피고용자의 경우에는 기업이 리스크를 짊어지므로 더 좋을 수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도 있지만 이는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전제돼야만 하는 만큼 노·노 사이의 협력과 노사간 신뢰 회복이 선행돼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논하고 싶은 것은 국제 비교시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복지정책과 관련해 국제 비교를 할 때면 거의 반드시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잘 사는 나라들과 비교한다. 따라서 제도적 차이에 의해서도 격차가 나타나지만, 제도 성숙도의 차이, 포괄범위의 차이, 소득수준, 경제발전 단계의 차이, 인구구조의 차이 등 여러 가지 차이가 있다. 이런 차이를 제대로 감안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하게 비교하면, 호소력은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능력을 무시한 채 엉뚱하거나 무리한 결론을 유도할 수 있는 위험성도 함께 지니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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