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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7.04. (금)

유럽의 재정위기와 Governance

 유럽의 재정위기 때문에 전세계가 시달리고 있다. 해결될 기미도 잘 보이지 않는다. 왜 이렇게 속수무책인가? 이렇게 오랜 시간 위기가 지속되고 있는데 왜 아직 유럽 국가들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가?

 

 유럽 재정위기의 근본적인 성격은 Governance의 위기에 있다. 위기를 야기시킨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같은 나라들의 문제는 그 나라들이 사회보장 수준이 과도하게 높아서도 아니고 부패에 기인하는 것도 아니고 산업이 특히 경쟁력이 낮아서 비롯된 것도 아니다.

 

 이들 나라들의 사회보장 수준이 유럽에서 높은 수준은 전혀 아니며 오히려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라는 것은 OECD 국가별 비교 자료에서 바로 볼 수 있다. 이들 나라들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나 중국과 같은 나라와 비교해 특히 더 부패한 것도 아니다. 이탈리아의 북부 지역의 기업들의 경쟁력은 영국의 경쟁력보다 결코 낮지 않으며 그외의 다른 나라들의 기업 경쟁력이 낮다 하더라도 이것이 그들 나라들에게는 큰 문제일망정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게 재앙이 될 수는 없다.

 

 물론 사회보장 수준 등과 관련해 이들 나라에서 수입보다 지출이 많으니 재정적자가 누적된 것 아니냐는 지적은 당연히 옳다. 그러나 지나친 사회보장도, 혹은 부패도, 낮은 경쟁력도 이들 나라들이 유로라는 단일 화폐를 사용하는 국가가 아니라 영국과 같이 EU에 속하면서도 유로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라면 그들 나라들의 국내 문제로 그칠 것이며 다른 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인 것이다. 그렇게 보면 유럽 재정위기의 근본적인 성격은 이들 위기 진원지 국가들의 사회보장 수준, 부패, 낮은 경쟁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EU, 혹은 유로존 국가들의 정책 Governance의 어려움에 있다.

 

 EU의 정책 Governance는 유로존 국가들이 이자율, 화폐량, 환율이 관련되는 통화정책은 ECB(유럽중앙은행)EU 차원에서 행사하도록 국가의 정책 주권을 양도하면서 재정 정책은 국가별로 분리해 행사하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했다. 이렇게 출범한 EU 경제가 유로 도입후 9년이 되어가는 이제 비로소 이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많은 정치가들과 정책전문가들의 논의를 거쳐서 이뤄진 결정이었지만 경험해 보지 못한 영역에서의 인간의 지식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 보인 것이다.

 

 위기의 진원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바로 그리스 사람들이다. 그리스가 유로존 바깥에 위치했다면 그리스의 낮은 경쟁력은 환율 절하로 해결됐을 것이고 재정위기는 아예 발생하지 않았거나 외부에 문제를 야기시키지 않을 정도로 영향은 제한됐을 것이다. 통화정책의 주권을 ECB에게 양도함으로써 환율 절하의 메카니즘이 부재하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탈리아와 영국을 비교하면 문제의 윤곽이 쉽게 드러난다. 이탈리아의 경쟁력이 영국보다 낮은 것도 아니고 GDP 대비 정부 부채가 더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탈리아가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은 통화 주권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영국이라면 재정이 좋지 않더라도 위기시에는 중앙은행이 발권해 정부 부채를 인수해 줄 수 있기 때문에 채권자들이 영국 국채에 대하여는 위험하게 보지 않는 것이다.

 

 EU의 정책 Governance의 문제에는 ECB의 성향도 추가된다. 미국이나 영국의 중앙은행에 비해 ECB는 물가 안정을 중시하며 이를 거의 유일한 정책 목표로 추구한다. 독일의 바이마르시대의 초인플레이션의 경험에서 출발한 독일연방은행의 물가안정 중시정책이 세계적으로 신뢰를 얻었고 ECB는 이를 계승한 기관이다. 때문에 최근 트리셰 총재가 위기 국가들의 국채를 매입해 주면서 재정문제에 일정 정도 개입했으나 이에 반대하는 의견이 비등했다. 이에 대해 경제학자 크루그만은 최근의 사설에서 ECB가 위기의 와중에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을 날카롭게 비판한 바 있다. 현재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보다 경기침체가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하여는 시각의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

 

 위기의 해결이 이렇게 더딘 것과 관련해 지적돼야 하는 점은 그리스 정치가들이기보다는 유럽의 경제대국인 독일과 프랑스, 특히 독일의 정치가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독일은 유로화의 도입으로 가장 큰 혜택을 본 나라이다. 제조업에 강한 경쟁력을 가진 나라로서 마르크 시절이었다면 외환수지 흑자는 지속적인 환율 절상으로 이어져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유로 도입은 유로 환율이 회원국들 전체의 유로존 외부에 대한 경상수지에 따라 결정되므로 경쟁력이 약한 회원국들의 도움으로 유로의 환율이 독일에게 매우 유리하게 결정된 상태로 오래 지속되므로 경상수지는 항상 흑자이며 기업은 계속 가동되고 고용도 높은 수준으로 오래 유지되고 있다. 재정 흑자는 이에 따른 당연한 결과가 된다.

 

 이렇게 보면 독일은 재정이 약한 주변 국가들에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고 도와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독일의 국민들은 유로본드를 발행하거나 재정지원펀드에 더 출연하는 방식으로의 그리스 지원에 반대하는 여론이 높다.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가들은 이 눈치를 보게 된다.

 

 비교해 보면 독일의 경우 EU 내에서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상대적인 부자 나라의 이기심(연대의식 부족)이 표출된 것이며 미국에서의 재정위기와 증세와 관련한 공화당의 행태는 한 나라 안에서 서민들에 대한 부자들의 이기심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서든 위기의 본질은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Governance, 즉 정치의 문제이다.

 

 문제는 확인된 것이다. 통화정책은 EU 차원에서 이뤄지면서 재정정책은 개별 국가들이 행사하는 지금까지의 방식은 비록 개별 국가 지향성과 유럽합중국 지향성 사이의 갈등하는 유럽인들의 현재 성향을 적절하게 반영하지만 경제적으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것은 경험한 바와 같다. 유로화의 포기는 돌아갈 수 없는 길이며, 길은 이제 하나다. 개별 국가들의 재정주권을 상당부분 EU로 넘겨야 한다.

 

 물론 이를 통해 유럽합중국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재정정책도 국가들이 개별적으로 행사하다가 정부 부채가 GDP의 일정비율을 넘는 경우(예를 들어 60%)에 해당 국가의 재정적 결정이 EU 차원의 제재를 받게 되는 정도로 정책 Governance에 대해 합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도 그러나 매우 지난한 EU 차원과 개별 국가들 내부에서 민주적 합의과정(헌법 개정)을 거쳐야 한다.

 

 별도로 현재 바로 직면하고 있는 그리스 등 개별 국가들의 재정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국가들이 Euro-Bond를 공동으로 발행하는 방법도 매우 긴 의사합의 여정이 필요하다. 그리스에 대해 부채의 (부분)탕감을 해주고 유로권에서 일정기간 이탈해 지내면서 경쟁력을 회복해 다시 복구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이 역시 부채 탕감을 위해 경제력이 있는 국가들의 재정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긴 정치적 여정이 필요하다.

 

 현재로서는 ECB가 이들 국가들의 국채를 더 사주는 방법 이외에는 정치적으로 빠르게 추진될 수 있는 길은 없다. 그러나 이 국채를 나중에 상환받지 못하는 결과가 생긴다면 그때는 마찬가지로 경제력이 있는 국가들이 이를 부담해 줘야 하기 때문에 ECB도 국채 매입이 위임된 권한을 넘어서는 행위라는 비난을 받게 되므로 나서기 쉽지 않다. 유럽의 재정위기는 상당기간 지속되면서 세계 국가와 시민들을 괴롭히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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