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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7.04. (금)

자본시장의 교란자들

김유찬 홍익대 교수

 그리스 재정위기가 쉽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신용평가기관들은 포르투갈의 평가등급도 하향 조정했다. 그리고 7월11일의 뉴스에서는 드디어 이탈리아도 위험하다는 자본시장의 평가도 보도됐다.      

 

 이번의 평가등급 하향조처로 포르투갈은 2년 만기 정부채권에 대해 지금까지의 연 12%가 아니라 4%p를 더한 연 16%의 이자를 지불해야 겨우 재원 조달이 가능하게 됐다. 현재 재정이 상대적으로 건실한 EU의 다른 국가들이 연 3%를 살짝 웃도는 수준의 이자율로 정부채권을 통한 자금 조달을 하고 있는 것에 비교하면 4%p의 이자율 인상은 당사국에게 공포스러운 부담을 안겨줄 것은 자명하다.

 

 이탈리아에 대한 자본시장의 부정적인 평가는 이제 EU의 재정위기가 지금까지와 다른 차원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7월11일의 보도 이후에도 아직 이탈리아 국채는 독일 국채의 이자율 수준에 3%p에서 약간 부족한 정도 가산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는 7월 11일 이전의 2%p 수준의 격차에서 크게 오른 것은 아니다. 그러나 EU에서 세번째로 큰 경제력을 갖는 국가로서 이탈리아의 위기는 바로 그 경제규모로 인해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같은 EU의 소국들의 재정위기와는 다른 성격을 가진다. 지금까지 그리스 재정위기를 심각하게 봤던 이유가 바로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와 같은 나라들로 위기가 옮겨갈 가능성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한 나라에서 재정위기의 발생은 적자재정이 오래 누적되면서 발생한다. 재정 규율의 문제, 과도한 복지, 부패의 문제 등이 요인으로 거론된다. EU 국가들의 경우에서 보면 북구국가들이나 독일과 같은 복지수준이 높은 나라가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 포르투갈 같은 복지수준이 낮은 나라가 재정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다소 부자연스럽게 보일 수도 있는 이러한 결과는 재정적자는 복지 수준이 높아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복지 지출을 위한 재원 조달이 부족하거나 지나치게 일반재정(조세)에 의존하는 경우에 일어난다는 점을 상기하면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다. 복지수준이 높은 나라들은 오히려 이로 인한 재정문제의 해결을 위해 오랫동안 효율적인 제도적 개선책을 모색했다. 결과적으로 높은 복지제도의 수준을 포기하지 않고 유지하면서 부패하지도 않고 기업의 경쟁력을 나름대로 유지하면서 재정문제를 잘 관리하고 있다.

 

 개별 국가들의 문제가 EU 전체의 재정위기로 확산되는 이유는 물론 EU가 불완전한 경제공동체라는 점에 있다. 금융정책은 통합됐으나 재정은 개별 국가들이 독립적으로 행사하고 조세정책은 EU 차원에서 부분적으로 조정되나 대체로 개별 국가의 권한에 있다. EU는 (아직) United States of Europe이 아니다.

 

 불완전한 공동체 내에서 Governance가 잘 작동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일 것이다. EU의 주역들, 독일이나 프랑스의 정치 지도자들과 유럽중앙은행장들은 이 재정위기의 해결을 위한 방향을 아직도 제대로 정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많은 재정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독일과 프랑스의 정치가들은 자본시장의 동향과 국민여론 사이에서 부심하고 있다. 자본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 이들 정부의 강력한 지원과 보증은 국내적으로 정치적 다수를 등에 업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중요한 문제(즉 재정문제)에 직면하면 아직 독일인이고 프랑스인이며, 유럽인으로서의 의식이나 사회적 연대감은 아직 충분히 성숙돼 있지 못함을 목도하게 된다.

 

 근본적인 해결책으로서 거론되는 것은 Euro-Bond의 발행과 민간분야(즉 투자자인 금융기관)가 손실에 참여하는 방안이다. 개별 국가들이 발행하던 정부채권을 EU차원에서 Euro-Bond로 발행하면 재정이 취약한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매우 유리한 이자율로 재정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누적된 국가부채에 대해 지불하는 이자 지출이 매년에 정부 지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들 국가들의 입장에서 보면 거의 완벽한 해결책이 된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이자율로 재정자금을 조달하던 독일과 같은 나라에게는 이는 매년 수십조원에 달하는 추가적인 지출을 의미하게 된다. 결국 이 방안은 채택되지 못하고 있다. 민간분야가 손실에 참여하는 방안도 신용평가기관의 문제로 아직 해결책으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 채권자 금융기관이 손실에 참여하게 되면 신용평가기관은 해당 정부채권을 사실상 회수불능(Default)로 평가한다는 것이고 이 경우 다른 국가들로 문제가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 일부 학자나 정치가들은 매우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EU와 유로화의 붕괴를 예고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직 EU의 주역들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일정한 범위 내의 펀드를 통한 재정지원만을 내놓고 있다.  

 

 새겨 봐야 할 다른 측면이 있다. 재정위기를 야기시키는 다른 숨겨진 주역들이다. 투자은행이나 헤지펀드들은 재정이 취약한 나라들을 공격하면서 위기의 와중에 큰 수익을 거두고 있다. 이들은 (그리스) 정부채권을 판 다음에 나쁜 정보를 흘리고 가격이 다운되면 싸게 매수해 이익을 남기거나, 아예 공매도를 통해 수익을 남기기도 하고, 혹은 CDS(Credit Default Swap)거래를 통해 이익을 남기는 방법 등을 택하기도 한다. 이 투기자본의 공격대상은 하나가 함락되면 다음의 먹이감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가끔 예정했던 순서를 바꾸기도 한다. 이번에도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의 말실수를 계기로 이탈라아를 스페인보다 앞순서로 바꾼 것이다. 

 

 그리스, 포르투갈, 이탈리아만 문제가 아니라 사실 일본이나 미국도 재정적자가 심각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경제규모가 큰 나라는 투기자본의 공격 대상이 되지 않는다. 나라가 작으니 조심하라? 같은 재정적자 국가들 중에서 공격 대상의 선택은 이들 투기자본이 수행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 공격의 목적은 단지 무자비한 수익의 창출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행위는 비판적 관심의 대상이 된다.        

 

 신용평가기관의 역할도 심각하게 고려해 볼 사안이다. 채권자 금융기관이 손실에 참여하게 되면 이를 회수 불능으로 보는 방식으로 이들 기관은 사실상 재정위기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민간의 손실 참여를 통해 일단 심각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으므로 (그리스) 정부채권은 미래지향적으로 볼 때 안정성이 향상되는 것이다. 또 실제로 투기적 동기를 갖고 고위험 자산에 투자한 금융기관은 일부 투자자산이 실제로 상환불능이 돼도 이를 상쇄할 만한 이익을 향유한 것이고 이자율은 이 때문에 높은 것이다. 즉 이 방법은 시장원리에 상응하는 해결책이다.    

 

 신용평가기관의 역기능은 EU가 민간의 손실참여 방식으로 재정위기를 해결하기 어렵게 만드는데 그치지 않는다. 신용평가기관의 실제적 기능은 이전부터 위험했던 국가들을 공식적으로 위험하다고 분류함으로써 그 이후에는 노력해도 그 위치에서 탈피하기 불가능하게 만드는 역할에 그쳤다. 최근의 포르투갈의 예를 보라!

 

 투기자본은 투기로 이익을 보는 사적 영리조직이다. 그리고 신용평가기관은 이들에게서 받는 수수료 수입으로 수익을 남기는 사적 영리기관이다. 이에 더해 평가기관의 모기업도 이 투기자본인 경우가 있다. Moody's의 경우 Warren Buffett의 헤지펀드 Birkshire Hathaway가 12.5%로 다수 지분을 소유하고 다른 지분은 분산돼 있다. S&P는 미디어 그룹 McGraw-Hill이 100%의 지분을 소유한다.

 

 이들 평가기관의 수익구조와 자본구조가 도적적 해이를 유발하기에 매우 자연스럽기에 이들 평가기관의 평가 결과를 아무런 의혹없이 수용하기는 어렵다. 그러기에는 세계의 자본시장이 너무 위태롭고, 자본시장의 의사결정은 이 취약한 평가기관의 결과에 너무 종속돼 있다. 향후 자본시장에서 평가기관들의 경제적 역할은 제한돼야 한다. 세 평가기관의 과점적 구조도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 이외에 유럽과 아시아에서도 새로운 평기기관이 창설돼야 한다. 자본시장에는 규율과 질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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