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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7.05. (토)

보이는 손의 유혹

곽태원 교수(서강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자원의 배분과 소득의 분배작업을 매우 효과적으로 수행한다는 것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에서 불평의 소리가 들리면 정책 담당자들은 금세 '보이는 손'을 사용할 유혹을 받는다. 시장이 헝클어 놓은 문제들과 그것들을 바로잡을 수단들이 너무 확실하게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시장의 분배 메커니즘과 그 결과는 꾸준한 공격을 받아 왔다. 무엇보다도 시장의 분배는 소득 생성에 대한 기여만을 고려하고 필요는 반영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능력에 따라 일하게 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해 주면 얼마나 좋은가?" 시장경제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바로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너무 확실한 답을 발견한 정책당국자들은 이렇게 명령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이 그러한 체제를 만들어 보겠다는 의욕으로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희생 하에 거대한 실험을 했지만 참담한 실패만을 거뒀던 것을 확실하게 봤어도 그러한 체제의 유혹이 너무 강해서 시장경제를 믿는다는 고백을 하면서도 시장을 향한 가시적인 수신호를 자주 내보내는 것이다.

 

 친시장, 친기업을 표방하면서 출범한 현 정부가 친서민의 기치를 높이 들면서 공정한 사회라는 화두를 던진 뒤 심상치 않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복지예산을 크게 늘리고 고용시장에 은근한 간섭을 시도하고 있다. 이 정도의 정부 행태를 비판하려고 오래된 사회주의의 선전구호를 들고 나오는 것은 좀 과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시장경제체제 하에서도 정부의 역할이 있다. 시장이 완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나치지 않은 복지정책이나 재분배정책 그리고 경기조절정책 등은 시장경제체제를 표방하는 현대 국가들의 정상적인 정책메뉴에 포함되는 항목들이다.

 

 그러면 왜 사회주의의 실패를 이러한 정책에 연결하려는 것인가? 그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사회주의를 실패하게 한 근본적인 요소들이 오늘날의 재분배 정책이나 다른 시장개입정책에도 여전히 살아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의 첫번째 문제는 명령이 사람들로 하여금 능력에 따라 일하게 할 수 없다는데 있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유인이라는 묘한 끈으로 사람들을 조정하지만 이러한 수단이 없는 사회주의체제는 명령과 강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누가 어떠한 능력을 갖고 있고 그 능력을 얼마나 발휘하며 일하고 있는가를 항상 파악해야 하는데 아무리 비밀경찰을 많이 동원해도 그것이 잘 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시장경제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그 유인이라는 것은 성과(기여)에 따른 분배에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주의는 그것을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두 번째의 문제는 필요에 따라 나눠 주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나 조직의 도덕성이 분배의 공정성을 좌우한다는 점이다. 필요에 따른 분배원칙이 공정하게 지켜지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필요가 정확하게 파악돼야 하고 파악한 대로 정직하게 분배해야 한다. 그러나 부패할 수밖에 없는 권력의 속성 때문에 실제에서는 공정성이 심하게 훼손되고 북한에서와 같은 극단적 격차의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문제는 오늘 우리의 정책현실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분배정책이나 시장개입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할 때 이러한 점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사회주의의 실패까지 거론하게 된 것이다. 경제정책에서 유인의 왜곡이 나타날 가능성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재분배 관련 정책에서 도덕성의 문제는 어떤가? 최근 언론에 보도된 모금조직에서의 비리도 이러한 부류에 속하는 작은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수급 또는 지원 대상자나 대상 기관 등의 선정과 관련된 온갖 불공정과 비리는 행정 권력을 가진 개인이나 조직에 의해서 언제라도 발생할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사건이나 관련된 불평이 자주 보도되지만 실제의 상황은 더 나쁠 것이라고 짐작된다. 이것은 도덕성의 문제 뿐 아니라 정보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복지 지출은 복지관련 인프라의 구축 없이 성급하게 확대돼서는 실패하기 쉽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또 재원 조달이 앞에서 말한 유인체계를 가능한 한 덜 훼손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도 말하고 싶다.

 

 그리고 공정 혹은 정의를 말할 때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접근 보다는 훨씬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특히 강조하고 싶다. 성경에 나오는 정의의 요구는 매우 구체적이다. "저울추를 속이지 말라. 거짓 증언을 하면 처벌받는다. 재판할 때는 가난한 사람이라고 불리하게 해도 안되고 유리하게 해도 안된다. 누구든지 자기 주위의 고아나 소득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돌봐야 한다."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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