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위헌(헌법불합치 포함)판결이 난 것은 조세법 분야에서 가장 많은 통계를 보인 바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면에서 보면 조세법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합헌성 검토를 소홀히 했거나 조세징수 목적에 치우친 나머지 민주적 제정절차를 간과한 데서 비롯된 결과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특히 상속·증여세법은 아직도 위헌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 내용이 많이 남아 있다고 본다.
상속세법 제15조에는 피상속인(사망인)이 상속개시일 전 일정한 기간에 재산을 처분했거나 채무를 부담한 금액이 있는 경우에 상속인이 그 대금의 사용처를 입증하지 못하면 그 처분재산가액이나 채무부담액을 상속재산으로 추정해 상속세를 부과한다는 규정이다.
우리나라 민법은 各 者 別産制 즉 부부간이나 부자간이라도 재산권에 관하여는 독립해 소유하고 관리하도록 돼 있는 제도이다. 그러하기에 한 가족이라 하더라도 재산권을 이전하면 부부 또는 부자간에도 매매 또는 증여가 성립되며 따라서 양도소득세 또는 증여세가 부과된다. 다만 사망으로 인해 상속인에게 이전되는 경우에는 상속세가 부과된다는 차이뿐이다. 이 경우에 재산권이 이전된다고 함은 부동산과 같이 등기를 요하는 재산은 이전등기를 하거나 동산같은 것은 점유를 이전하는 등 소유권 이전이 실현됐거나 실현될 것이 확정되는 재산에 대해 과세하는 것이 실질과세원칙이나 근거과세원칙에 합당하다고 본다.
그런데 위 법 제15조는 이러한 재산권 이전사실에 불구하고 재산권 이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해 과세한다는 규정이다. 이러한 법률은 헌법이 보장하고자 하는 재산권 보장이나 조세법률주의에 반한다고 본다. 근대 헌법에 나타난 조세법률주의는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기 위해 조세의 부과와 징수는 법률의 규정에 의하되 구체적 실현을 담보하기 위해 그 내용이 명확해야 함을 근간으로 삼고 있는, 이른바 과세명확주의에 터잡아 이를 더욱 구체화한 규정이 국세기본법의 실질과세원칙과 근거과세원칙으로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불명확한 내용의 법규를 적용해 과세하거나 근거가 없이 추정에 의해 과세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법 제15조는 과세근거의 입증책임을 납세의무자에게 지우고 있으며 따라서 이를 입증하지 못하면 상속재산이 있는 것으로 추정해 과세한다는 내용이다. 입증책임의 원리는 입증할 내용을 주장하는 쪽에 있는 것이 일반원칙이며 대법원은 조세를 부과하려면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과세관청에 제1차적인 입증책임이 있다는 것을 일관되게 주장해 오고 있다. 그런데 이 경우에만 법률이 납세자에게 입증책임을 떠넘겨 버려서 상속재산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속세를 내게 된다면 헌법상의 재산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법은 상식으로부터 비롯된다는 말이 있다. 죽은 사람은 세상의 온갖 것을 그대로 놓아둔 채 세상을 떠났다, 남겨둔 말도 없다. 그의 처 자식은 법률의 규정에 의해 남겨두고 간 재산을 나눠갖게 되어 있다. 그밖의 재산은 어디로 갔는지 , 어떻게 썼는지 알 길이 없다. 이 알 길이 없는 것을 자식들이 입증하지 못하면 과세한다는 것이다. 과연 상식에 맞는 법일까?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계기를 만들어 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법 제15조가 合憲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난 바 있다.
조세권 확보를 위한 부득이한 조치라는 것이 판결의 이유다. 이는 위헌성이 있음을 시인하는 셈이 되는 것이며 조세권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판결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풀이도 되는 것이다.
그 판결이 난 후로도 강산이 몇번이나 변했다. 그 판결 당시만 해도 컴퓨터와 같은 과학적인 자료 수집이 어려운 때이므로 국가의 조세권을 보장해 준다는 취지로 일반적인 과세논리를 벗어난 결정을 내렸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전자기술(컴퓨터 등)의 발달로 내 재산의 변동상황을 나보다 컴퓨터가, 아니 국세청이 더 잘 알고 있는 이 때에도 죽은 사람이 처분해 버리거나 소비해 버린 재산의 존재를 산 사람에게 밝히라고 한다면 핵가족사회가 되어 부모와 자식이 함께 살지도 않는 세상에 그것을 밝혀 낼 방법을 찾기는 어렵다고 본다. 설사 보이지 않는 곳에 몰래 숨겨 상속해 주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열명에 한명에 불과하다면 한명의 조세포탈을 막기 위해 아홉명에게 예측할 수 없는 조세를 부과해 손해를 입힌다면 공평한 조세제도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하다면 이 법 제15조는 헌법의 재산권 보장과 조세법률주의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조세법의 지배원리라고 할 수 있는 명확성의 원칙,근거과세의 원칙, 실질과세의 원칙, 공평과세의 원칙을 모두 저버린 규정이라 사료되므로 조속한 개선이 요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