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세와 관련한 조세범죄를 처벌하는 규정인 조세범처벌법은 지난 1951년 제정돼 반세기가 넘도록 일부개정 외 주요구조는 제정당시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로 인해 현 조세범처벌법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지난 1999년 당시 조세범처벌법 개정의 필요성을 인식해 개정작업에 돌입했지만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와 법무부간 의견 조율이 되지 않아 개정되지 못한 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 조세범처벌법의 개정 필요성이 또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정리'가 되지 않아 일관성이 없고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조세범처벌법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이중교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사진>로부터 현 조세범처벌법이 지닌 문제점과 개선방향에 대해 들어봤다.<편집자 주>
ꡐ현 조세범처벌법이 가진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현 조세범처벌법의 문제점은 첫째로 조세범 인식의 문제다. 현행 조세범처벌법은 탈세범이 아닌 단순한 행정의무위반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을 고집하고 있다. 이는 반사회적·반윤리적 행위에 대해 형벌을 과하는 범죄의 본질에 반할뿐만 아니라 경미한 법규위반 행위에 대해 다수의 전과자를 양산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두 번째로 현 조세범처벌법은 행정법의 성격뿐만 아니라 형사법적 성격을 띠고 있는데 형법에 의해 규율이 가능한 범죄가 있다. 예를 들어 세금계산서 미수취조, 폭행을 동원한 조세 신고 및 납부방해죄는 형법에 강요죄로도 처벌할 수 있기 때문에 조세범처벌법으로 규율할 필요가 없다. 또한 체납처분면탈죄의 방조는 형법의 일반원칙에 의해서도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에 굳이 체납처분면탈죄의 방조를 처벌하는 규정을 둘 필요가 없다. 이러한 조항들을 조세범처벌법에 존치시키는 것은 법령의 체계를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세 번째 문제점으로는 현 조세범처벌법은 형벌이라고 보기에는 과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세포탈죄를 범할 경우 가산세를 포함해 포탈세액을 납부해야 하고 포탈액은 몰수·추징당한다. 여기에 포탈액의 5배에 상당하는 액수의 벌금형에 처해질 경우 범죄인이 부담해야 할 액수는 포탈세액의 6배 이상이 된다. 이는 적정한 응보를 넘어선 것이다. 또한 현행법상가산세와 조세벌은 흔히 중복 적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단순한 행정의무위반행위를 비범죄화해 과태료 등 행정상의 제재로 전환할 경우 그 행위가 가산세 부과대상에도 해당하는 경우가 생긴다. 네 번째로 조세범처벌법에 규정된 범죄의 구성요건 중에는 단순히 '법'이라고만 규정돼 있는 그것이 어느 법을 의미하는지 불분명한 조항이 존재한다. 또한 구성요건 중 일부는 구체적인 행위 유형을 열거하지 않은 채 '부정한 행위', '정당한 사유' 등 추상적 개념을 사용해 그 의미가 분명하지 않은 조항도 있다. 마지막으로 국세청에서 고발을 해야만 수사를 할 수 있게 한 고발전치주의가 문제다. 이는 위법행위에 대해 국세청의 고발이 있기 전에 강제수사를 할 경우에는 적법성 논란이 있는 등 고발전치주의가 존재하는 한 검찰의 수사는 한계가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ꡐ조세범처벌법의 개선방향을 제시하신다면.
"앞에서 말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단순한 행정의무위반행위는 과감하게 비범죄화해 과태료 등 행정상의 제재를 가하는 방향으로 정비하는 것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이와 함께 형법규정과 중복되는 조세범죄에 대해서는 형법을 제쳐두고 반드시 조세범처벌법에 의해 규율할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 한 조세범처벌법에서 삭제하고 형법의 일반원칙에 의해 규율해야 한다. 또한 형벌이라고 보기에 과한 측면을 시정하기 위해서는 배수벌금제를 정액벌금제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때 벌금의 액수는 징역형을 감안해 결정해야 할 것이며 범죄인이 조세범죄로 취득한 이익의 박탈은 무거운 벌금형을 과함으로써가 아니라 몰수·추징제도나 강제집행제도의 개선을 통해 달성해야 할 것이다. 또 범죄 구성요건의 개개의 표지는 문언의 의미에 의해 해석 가능해야 한다는 명확성의 원칙상 가급적 불명확하게 규정돼 있는 구성요건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고발전치주의와 관련해서는 존치시킬 경우에는 법률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방안이나 결정에 대한 내부적 심사제도를 마련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국세공무원의 재량권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검사의 고발요구제도를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즉 조세범죄사건을 수사한 검사가 범죄가 중대해서 고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함에도 불구하고 세무관청이 고발하지 않는 경우에는 국세청장에게 당해 조세범죄사건에 대해 조사를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세무관서와 검찰의 협의체 혹은 합동수사기구를 두는 것도 고발여부에 대한 세무공무원의 재량권 남용을 통제하는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ꡐ외국의 경우와 비교해서 우리나라 조세범처벌법 형벌 경중을 비교하신다면.
"외국의 입법례와 형법상의 유사범죄 등과 비교할 때 조세포탈에 대한 특가법위반죄의 법정형은 지나치게 무겁고, 조세범처벌법위반죄의 법정형은 배수벌금제로 규정된 것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가볍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조세범처벌법은 이러한 점을 고려해 법정형을 정해야 한다. 그밖에 범죄의 일반예방 및 특별예방 효과, 형법상 책임주의의 실현, 경제규모의 확대와 경제환경의변화 등을 반영해 전체적으로 법정형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ꡐ1951년 재정된 이후 현재까지 개정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조세범처벌법은 지난 1951년 제정된 것으로서 지금까지 몇 차례 일부개정을 거친 것 이외에 주요 구조는 제정 당시의 틀을 그대로 유지해 오고 있다. 반세기가 넘는 기간이 흐르면서 제정 당시의 법이론과 사회통념이 크게 변화한 반면 조세범처벌법은 이러한 변화를 제때 반영하지 못해 다양한 이론상·실무상 문제점들을 양산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인식해 지난 1999년 조세범처벌법 개정을 하기 위해 관련 부처간 한자리에 모인 적이 있다. 그러나 재정부와 법무부간 의견이 조율이 되지 않아 개정되지 못했다. 관련부처간 협의가 되지 않는 다는 것이 조세범처벌법을 개정 못한 가장 큰 이유다. 부분적인 개정만 있다보니 이로 인해 정리가 안되고 일관성도 없고 체계도 갖추지 못했다. 범죄배열에 원칙도 없고 제목이 아예 없는 것도 있다. 현재 조세범처벌법은 리모델링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재건축이 필요한 시점이다."
ꡐ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조세범죄는 점점 전문화되고 지능화되고 있는 반면 조세범처벌법은 규정이 오래돼 처벌 유형이나 형량 수준의 타당성이 상당히 떨어져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조세범죄에 대해 미온적인 대응을 하게 됨에 따라 일반 국민으로 하여금 조세범죄는 걸리면 운이 없을 뿐이고 안 걸리면 상관없다는 식의 인식을 주게 돼 사회 전반에 도덕적 해이 현상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므로 하루라도 빨리 조세범처벌법은 개정해야 한다. 그러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는 고발전치주의는 부처간 합의가 잘돼야 빛을 볼 수 있을 듯 하다. 지난 1999년에도 개정이 되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인 듯 하다. 하루 빨리 부처간 합의를 통해 이를 해결하고 꼭 처벌할 필요가 없는 것은 솎아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에게 조세범죄에 대한 위법성을 인식시키고 조세범죄도 범죄라는 인식이 확산돼야 조세범처벌법도 제대로 기능을 할 것이다. 조세범죄는 죄질이 좋지 않다."
-판례-<편집자주>
지방세를 포탈한 경우에는 세무공무원이 고발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어 고발 없이 이뤄진 검찰 기소는 무효이며, 조세범처벌법에서 '조세'는 국세를 뜻하기 때문에 지방세포탈은 조세포탈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현행법에는 지방세를 포탈하면 국세 처벌 규정인 조세범처벌법을 적용해 처벌하게 돼 있다.
검찰은 지난 2005년 보세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담배 270만 갑을 유통시켜 담배소비세 등 지방세 26억원을 내지 않은 혐의로 김 某씨등을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포탈액수가 10억원을 넘는 조세범을 가중처벌하게 돼 있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특가법상 조세포탈 혐의를 적용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그러나 보세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담배를 유통시켜 지방세 26억여원을 포탈한 혐의로 기소된 김 씨 등에게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조세범처벌법에서 ‘조세’는 국세를 뜻하며 김 씨 등이 내지 않은 것은 지방세이기 때문에 조세포탈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또 지방세를 포탈한 경우에는 세무공무원이 고발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며 고발 없이 이뤄진 검찰 기소는 무효라고 설명했다.
이로써 김 씨 등은 세금 수십억원을 내지 않고도 처벌을 면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