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금융위기 후 냉담했던 외국계 투자사들이 우리 정부의 대규모 외화 유동성 확보 대책이 잇따르자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22일 기획재정부와 금융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2천억 달러 규모의 외환 보유액과 한미, 한중일 통화스와프, 그리고 무역수지 흑자 기조로 외화 유동성 위기가 사실상 끝난 것으로 보는 것과 관련해 외국계 투자사들도 동조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이는 원화 환율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데다 최근 한국 정부의 외화 유동성 확보 노력으로 최대 3천억 달러까지 동원 가능한 체제를 구축하면서 현재로선 막연한 불안 심리 외에 외화 유동성을 흔들만한 요소를 찾기 쉽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 모건스탠리 "원화 매도세 막바지"
모건스탠리, SCB 등 외국계 투자사들은 최근 원화 매도세가 진정되면서 한국의 외화 유동성 위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외환수급 및 환율전망' 보고서를 통해 원화 매도세가 막바지에 다다랐다고 분석하면서 원화 저평가 및 국제수지 개선 등 통화가 바닥을 칠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습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원화는 지난해 10월 이래 14개월 동안 환율이 68.3% 상승하면서 극심한 저평가 상태를 보인 만큼 현재가 바닥일 가능성이 있다는게 모건스탠리의 평가다. 원화의 실질 실효환율(REER)은 지난 13년 평균에 비해 27.8% 저평가 돼있다.
물론 여전히 은행권의 외채 롤오버가 어려워 불확실성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경상수지 흑자 전환을 필두로 국제수지 개선 조짐이 뚜렷하다는 점을 모건스탠리는 인정했다.
10월 중 경상수지는 사상 최대인 49억2천만 달러 흑자를 기록해 향후에도 흑자를 지속할 것으로 보이며, 자본수지도 최악의 상황은 지난 것으로 판단됐다.
또한 국제수지 불안의 원인인 은행권 외채 롤오버도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조치로 10월과 같은 대규모 외채 상환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됐다.
SCB는 최근 보고서에서 원화 비중을 축소에서 중립으로 상향 조정했다.
SCB는 원화 가치가 외화차입 여건, 경상수지 적자, 증권투자자금 순유출이라는 세가지 악재로 올해 하락 압력을 받아왔지만 최근 몇주 동안 한국 정부의 노력으로 부정적인 영향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평가했다.
한국은행의 외화대출 상환 기한 폐지, 10월 경상수지 대규모 흑자, 최근 외국인 투자자들의 주식 순매수 등을 긍정적인 요소로 평가했다.
SCB는 "원화의 투자 리스크 환경이 좀 더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면서 "원화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평가절하를 주도했고 향후 랠리도 주도할 것이며 또한 향후 몇달 동안 미 달러 자금 조달에 대한 우려도 줄어들 수 있다"고 밝혔다.
◇ 향후 위험 요인은
경제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외화 실탄을 넉넉하게 확보해 사실상 외화 유동성 위기가 올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낙관했다.
다만 미국과 유럽의 금융 시장에서 리먼 브러더스 사태에 이은 제2차 충격이 터질 경우 다시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최근 들어 이같은 일이 일어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이 줄었다고 밝혔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외화유동성 문제는 끝났다고 본다. 막대한 외환보유고와 한미, 한중일 통화 스와프만 봐도 외화 유동성 위기는 물리적으로 발생할 수 없다.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 외화 유동성 위기가 마감됐다고 보면 된다"고 주장했다.
권 실장은 "우선 외환 보유액이 2천억달러나 된다. 사람들이 별 것 아니라고 하는데 굉장히 큰 액수다. 또한 통화스와프 규모는 무려 900억 달러다. 단기 외채가 1천700억 달러라고 하는데 산술적으로 계산해도 우리가 동원 가능한 액수다. 다만 외환보유액이 2천억 달러 밑으로 내려가면 불안해 하는 심리적인 문제가 해결 과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외화 유동성과 관련해 앞으로 남은 위협 요소는 주식 시장에서 대규모로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는 것이지만 대규모 외화 유출이 있다고 해도 IMF 당시처럼 돈이 없어 못막는 일은 없기 때문에 안심해도 된다"고 말했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그동안 원화가 달러에 대해 변동이 심했던 것은 우리나라의 대외 채무 지급 능력이 IMF 당시처럼 취약한 상태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다"면서 "외환 보유액이 그런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상대적으로 큰 규모"라고 진단했다.
김 연구위원은 "우리가 당장 사용할 수 있는 통화스와프 등을 고려하면 동원 가능한 외환이 제법 많다"면서 "그동안 단기적으로 지급 불능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는데, 한중일 통화 스와프 확대가 그런 의구심을 없애주는데 기여했다"고 전했다.(연합뉴스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