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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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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범 20년만에 쇠고랑

뉴질랜드에서는 범행 20여년 만에 성폭행범을 철창 속에 집어넣은 경찰과 한 법의학자의 집념이 법과 과학의 이름으로 큰 찬사를 받고 있다.

 

이들의 집념이 없었더라면 난폭하게 유린당한 여성의 인권은 망각 속에 묻히고 범인은 자신의 추악한 범죄를 영원히 어둠 속에 감춰둔 채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년 동안 이 사건에 매달려온 법의학자 마이클 테일러(55)는 지금도 지난 1988년 2월 4일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일어난 범행 현장으로 달려가 감식활동을 벌이던 순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뉴질랜드 과학 산업 연구부 소속 법의학자였던 그는 그날 27세 여성이 이틀 전 무자비하게 공격을 당했던 한 아파트를 방문해 조사를 벌였던 것이다.

 

범인은 스타킹을 머리에 뒤집어쓴 채 아파트에 침입해 잠자고 있던 피해 여성을 깨워 칼을 목에 들이대고 성폭행하고 달아났던 것이다.

 

현재 환경 과학 연구소(ESR) 수석 연구원으로 있는 테일러는 뉴질랜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다른 사건보다 아주 난폭한 범행이었다는 것"이라며 이 사건에 매달리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DNA 법의학은 뉴질랜드에서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었고, 사건 현장에서 채취한 생물학적 시료는 충분한 DNA를 뽑아낼 수 없어 무용지물일 뿐이었다.

 

그래서 범인 추적은 집 안팎에 찍힌 발자국에 의존하는 낡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테일러는 치밀한 분석을 통해 발자국의 패턴이 용의선상에 오른 범인의 것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밝혀내긴 했으나 문제는 크기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경찰은 이 같은 점 때문에 용의자를 수사선상에서 제외시켜버렸고 수사는 그 때부터 제자리걸음을 계속하다 흐지부지돼갔다.

 

그러나 테일러는 그 사건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가 12년 뒤 DNA 시료를 확대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 나오자 다시 그 사건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새로운 기술을 사용해 DNA 시료를 분석하자 제일 먼저 수사선상에 올랐던 용의자를 배제한 것은 잘못된 결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는 20대 여성을 성폭행한 범인이 그로부터 8년 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일어난 90대 할머니 성폭행 사건도 저지른 동일 인물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그 사건 역시 미제로 남아 있었다.

 

두 미제 사건의 용의자가 같은 범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수사는 다시 활기를 띠는 듯 했으나 좀처럼 진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새로운 기술로 두 미제사건이 동일범 소행이라는 것까지는 밝혀냈지만 경찰 DNA 데이터베이스에 정보가 보관돼 있는 7만여 명 중에 용의자 정보와 일치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다시 미궁으로 빠져들던 수사는 7년 뒤 가족 DNA 테스트 기술을 새로 도입한 ESR에 경찰이 두 미제 성폭행사건을 새로운 기술로 한 번 더 재검토해보자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단계를 맞게 된다.

 

ESR은 즉각 사건 현장에서 채취한 시료와 가장 가까운 DNA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DNA 데이터베이스에서 골라내는 작업을 벌이기 시작한다. 범인과 어떤 관련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테일러가 이끄는 ESR팀은 드디어 새로운 기술로 가장 근사치에 있는 두 사람을 골라내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이들 중 한 사람은 놀랍게도 2004년 어린 소녀들이 관련된 일련의 성범죄로 예방구금형을 선고받은 케빈 자든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자든의 가족 중에 1988년 초동 수사 때 경찰의 조사를 받은 바 있는 웨인 자든(50)이라는 인물도 들어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의 형이었다.

 

이 같은 결과에 경찰은 환호했다. 하지만 아직 웨인의 DNA 샘플을 얻어낸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당장 쇠고랑을 내밀 수는 없었다. 그래서 경찰은 DNA 샘플을 얻어내기 위해 그를 미행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오클랜드에 있는 한 간이 음식점 앞에서 그가 버린 담배꽁초를 손에 넣는데 성공한 것은 지난해 11월이었다.

 

그리고 DNA 검사로 마침내 그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기에 이른다. 사건 발생 20여년 만이었다. 
하지만 그는 처음에는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다. 그러다 과학이 만들어낸 증거 앞에 더는 버티지 못하고 자신의 유죄를 모두 시인한 것은 지난 15일이었다. 경찰과 한 법의학자의 집념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연합뉴스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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