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여러분, 지금 밖으로 나가서 마음껏 돈을 쓰세요."
케빈 러드 총리가 다른 나라 국민들이라면 몹시 부러워할 호소를 하고 나섰다.
정부가 지급한 '크리스마스 보너스'를 8일부터 받게 되니 이를 받는 국민은 갖고 있지 말고 나가서 전자제품 등을 구입하라는 것이다.
이날부터 다음주까지 보너스를 받는 호주인은 무려 790만명으로 전 국민의 37%에 달한다. 퇴직연금 생활자와 노인들, 그리고 어린이 및 청소년 등이 대상이다.
이들은 1인당 최대 1천400호주달러(130만원상당)를 손에 쥐게 된다. 연금생활 부부는 무려 2천100호주달러(200만원상당)를 받는다. 뜻밖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세계 각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침체로 실직과 급여 삭감 등 유례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것에 비한다면 '더 없이 행복한' 선물이다.
정부가 재정흑자분 가운데 104억호주달러(9조6천억원상당)를 헐어 지급하는 것으로 자신들이 이미 낸 세금 일부를 돌려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기쁨은 남다르다.
그러나 돈을 쥐고만 있고 쓰지 않는다면 보너스를 통해 소비지출을 늘려 경기부양에 나서겠다는 정부의 의도는 물거품이 된다.
그래서 러드 총리는 휴일인 지난 7일 돈을 받으면 밖으로 나가 소비제품을 구입하는 등 건전한 소비활동에 나서도록 촉구한 것.
그는 빅토리아주 질롱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경제의 체질 강화를 위해 각 가정과 연금생활자들은 나가서 돈을 써야 한다"며 "보너스를 받는 200만 가구와 400만명의 연금생활자들이 돈을 쥐고만 있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밖으로 나가서 돈을 써달라"고 호소했다.
러드 총리는 "내년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한 해가 될 것"이라며 "우리 모두가 힘을 합해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업계는 정부의 보너스 지급으로 매출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마이어백화점은 이날부터 크리스마스 당일까지 특별 세일에 나섰다. 마이어백화점은 "나의 진짜 친구 러드가 나에게 (돈을) 줬다"라는 문구를 내걸고 대대적인 판촉행사에 돌입했다.
한편 정작 국민들은 정부의 소비진작책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둔화 심화로 미래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돈을 받았다고 마구잡이식으로 소비해 버리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라는 분위기다.
여론전문조사회사 뉴스폴이 최근 17세이하 자녀를 둔 530명의 부모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조사대상 가운데 60%는 지난해 연말때보다 지출을 줄이겠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기로 가계가 타격을 받고 있다는 게 주된 이유다.
또 44%는 여름 휴가철 호텔 및 항공권 예약을 취소했으며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휴가를 즐길 계획을 세운 것으로 조사됐다.
아예 휴가를 내년으로 미루겠다는 응답자들도 있었다. 주택 리모델링 계획도 취소하겠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33%나 차지했다.
호주상공회의소(ACCI) 최고경영자(CEO) 피터 앤더슨은 "이번 여론조사결과를 보면 올해 크리스마스 경기가 지난해보다 나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며 "이는 전반적으로 경기가 악화되고 있는 탓"이라고 말했다.(연합뉴스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