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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6. (목)

내국세

[稅政詩壇] -낙화, 꽃의 남용- 정재영(삼성서)

낙화, 꽃의 남용

 

 

 

화은산 동백 숲에 송이 째 떨어진 꽃들이 지천이다
나무들 저 생때같은 꽃들의 목을 꺾어
무더기로 발치에 뿌려두고 누굴 맞이할 참인가
인적 드문 산기슭의 꽃 멍석, 이건 꽃의 남용
 
번개 같은 칼날이 당하는 자의 표정을 비켜가듯,
낙화는 그런 한 찰나의 일이기에
그 숫기 없는 웃음 그대로 나무와 연이 끊긴 꽃송이들
땅에서 막 솟아오른 듯 생생하다
 
땅의 소생인 동백꽃
내 살점 떼어 간 살붙이들아
내 숨 받어먹고 어서 저 상록의 잎사귀처럼 깨어나 다오
 
결국은 제 가슴에 꽃을 묻고
그 꽃들이 다시 우듬지에 생을 매다는 봄이 올 때까지
땅이 회임할 고통을 아는가
 
나는 꽃들의 무덤이자 꽃들의 자궁인
동백 숲의 땅에 널린 꽃송이들 차마 밟을 수 없어
조심조심 발길 옮겨 딛는다
그러므로 이건 꽃의 남용,
고스라니 땅이 감당해야 할 꽃들의 죽음이다
 
생때같은 자식들을 앗긴 슬픔이 곰삭아
토양이 기름진 동백 숲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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