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형이나 금고형을 선고받고도 형 집행에 응하지 않고 잠적하는 자유형 미집행자수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검거 이후 전해지는 이들의 사연도 각양각색이다.
27일 수원지검에 따르면 올들어 잠적한 미집행자수는 83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2명에 비해 60% 가량 늘었다.
이날 현재까지 누적된 미집행자수는 전년도에 검거하지 못해 이월된 17명까지 포함하면 100명에 이른다.
이들 중에는 불구속 기소돼 불출석 상태에서 실형을 선고받는 '궐석선고' 사례가 80-90%를 차지하고 있다.
상급심에서 다퉈볼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실형을 선고하면서 법정구속하지 않은 틈을 타 종적을 감추거나 형 집행정지 또는 구속 집행정지 중에 줄행랑을 치는 사례도 있다.
수사단계에서 피의자가 해외로 도피하면 공소시효가 정지되는 것과 달리, 형 확정자는 해외로 도주해도 형 시효가 정지되지 않는 법조항을 악용해 출국금지 하기 전에 국외로 빠져 나가는 범죄자도 종종 있다.
◇70대 위조범의 이중생활 = 검찰은 형 집행 기간 중 두차례나 도주한 정모(77)씨를 지난 9월 어렵게 검거해놓고 하마터면 눈 앞에서 놓칠 뻔 했다.
사문서 위조, 사기, 절도 등 여러 건의 전과가 있는 정씨는 지난 6월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심장질환으로 형 집행정지로 일시 석방된 뒤 잠적한 상태였다.
주변 인물 휴대전화를 추적한 끝에 정씨가 살고 있는 서울의 한 단독주택을 찾아간 검찰 수사관에게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다른 주민등록증을 제시하면서 발뺌했다.
주민등록증은 해당 동사무소에서 정상 발급됐으나 얼굴과 지문이 동일한 것을 이상하게 여긴 수사관이 수감기록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정씨는 뒷문으로 도주하다 붙잡혔다.
정씨는 20대 시절부터 행정기관 업무 착오로 자신의 호적이 2개인 것을 알고 전과가 없는 '정○○'과 전과 투성이 '정△○'라는 이중 인생을 살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여러 여자를 만나면서 '재미교포 사업가' 행세를 하다 불구속 상태에서 사기죄로 징역 8월형을 선고받은 명문대 출신의 김모(52)씨는 도피 중 블로그를 관리하다 인터넷 IP 추적 끝에 6개월만에 검거되기도 했다.
◇딱한 사정의 수배자들 = 지난 7월 휴대전화 추적 끝에 충북에서 검거된 정모(50.여)씨는 사기죄로 궐석재판에서 징역 6월형이 확정됐으나 수배된 사실을 모른 채 새 가정을 꾸려 살다 검거됐다.
정씨는 전 남편이 딸의 결혼을 반대하자 다른 사람이 사업자금으로 맡긴 3천만원을 딸 결혼자금으로 주면서 사기범이 된 속사정을 털어놨다.
정씨는 사정을 딱하게 여긴 검찰의 도움으로 피해자와 합의한 뒤 다시 재판을 받게 해달라며 법원에 상소권 회복 청구를 냈으나 기각돼 결국 수감자 신세가 됐다.
지난 5월 출산을 앞두고 집행유예기간에 사기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김모(39.여)씨의 경우 한달 후 강원도 한 사회복지시설에서 검거됐다.
김씨는 형이 확정된 사기죄 이외에도 또 다른 사기 혐의 2건으로 수배 중이었다.
검찰은 소재를 파악한 뒤 산후조리가 필요할 것이라고 판단해 2주간 검거를 미뤘지만 그대로 두면 도주할 우려가 있고 교도소에서도 아이를 양육할 수 있어 검거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수원에서 소액 계를 운영하다 이달초 횡령죄로 징역 6월형을 선고받은 50대 여성은 잠적 10여일만에 뇌경색으로 반신마비 상태에서 붙잡혔다.
수원지검 미집행자 검거전담 나탁균 수사관은 "미집행자수 증가는 불구속 재판 추세와 비례하지만 최근 경제사정이 악화돼 피해자와 합의하지 못해 실형을 선고받는 사기범이나 폭행범이 많아진 것도 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불구속 재판 원칙도 중요하지만 미집행자가 늘어나면 국가 형벌권과 공권력이 무시돼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며 "해외도피에 대한 형 시효 정지나 형 집행정지자에 대한 전자발찌 착용과 같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연합뉴스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