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나라당은 20일 종합부동산세 개편과 관련한 그동안의 당정간 이견을 반영이라도 하듯 개편 내용에 대한 합의를 유보한 채 애매한 미봉책만을 내놓았다.
당정은 이날 오전 개최된 고위당정회의에서 '여야간 의견조율, 국회와 정부간 의견정리에 있어 한나라당이 조정 역할을 포괄적으로 위임받는다'는 수준에서 합의가 이뤄졌다고 한나라당 차명진 대변인이 전했다.
회의 시작과 함께 한승수 총리와 박희태 대표가 "향후 조치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있기를 바란다", "당정간 조속하게 결론을 내자"고 각각 의지를 다진 것과는 다른 결과물인 셈이다.
동절기 서민생활 안정대책에 대한 논의가 집중적으로 이뤄졌고, 종부세 개편안과 관련한 논의 시간은 10분에 불과해, 이 때문에 현재 쟁점이 되는 개편 내용에 대한 구체적 논의는 없었다는 게 차 대변인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날 회의에서 종부세 개편안에 대한 '단일안'이 나오기 어렵다는 판단이 내려짐에 따라 합의가 유보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헌재 판결 이후 종부세 개편안에 대한 여권내 의견이 무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날 정부의 기존 종부세 개편안을 그대로 보고했고 이에 홍준표 원내대표가 발끈했다는 후문이다.
홍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그것으로는 (야당과의) 협상, 합의가 불가능하다"며 "종부세 개편안의 일방 처리는 절대 안된다. 후폭풍이 정기국회를 마비시킬 것이다"며 목소리를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한승수 총리가 "당이 주도적으로 여야간 의견조율에 나서달라"며 서둘러 진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헌재의 종부세법 판결 이후 당정은 과표기준, 1주택 장기보유자의 장기보유 기준, 세율 인하안 등 종부세 개편의 '3대 핵심 사안'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과표기준과 관련, 한나라당은 '6억원'으로 잠정 정리했지만, 정부는 '9억원'을 희망하고 있다는 게 당 관계자의 전언이다.
또한 보유기준에 있어서도 정부는 '3년 이상'을 의견으로 제시해온 반면, 당은 '3년을 장기보유라고 보기 어렵다'고 맞서고 있다. 당에서는 '8년 이상'이 힘을 받고 있다.
세율 인하안에 대해서도 불협화음이 감지된다. 정부는 기존 세율 인하안인 '0.5∼1%'을 주장하고 있지만, 홍준표 원내대표는 정부안의 조정 가능성을 이미 시사했다.
결국 종부세 문제를 놓고 '혼선'을 거듭하기 보다 '선(先) 국회안 도출, 후(後) 정부 수용'의 수순을 밟음으로써 비난의 화살을 피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종부세 개편 뿐아니라 새해 예산안, 한미 FTA 비준안, 각종 개혁 법안 등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해야 하는 한나라당이 대야(對野)관계라는 정무적 판단을 내린 것으로도 해석된다.
이는 종부세 개편안에 대한 한나라당의 '탄력 대응'과도 연관된다. 한나라당은 지난 17일 박희태 대표 주재로 종부세 개편에 대한 당 지도부의 입장을 잠정 정리했지만, 변동 가능성을 열어놓은 상태다.
특정한 안을 미리 세워놓고 이를 밀어붙이기 보다는 유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야당과의 협상의 길을 터놓으면서도 '부자를 위한 감세'라는 비판에서도 한발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이 종부세 개편과 관련한 당론을 정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당론을 정하기 위한 과정 자체가 당내 이전투구로 비쳐질 수 있을 뿐아니라 '탄력 대응'이라는 원칙 자체를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 일각에서는 21일 종부세 개편 논의를 위한 의원총회를 열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연합뉴스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