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
모처럼만에 일요일 낮부터
절친한 벗과 만나 술 한 잔을 걸쳤다.
손목을 부여잡고 끈질기게 주저앉히려드는
술자리의 미련을 두 눈 질끈 감고
애써 외면하며 떨쳐버린 채
낮술에 불콰하게 취해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소피가 워낙 마려워 다급한 김에
체면과 염치를 잠시 저당 잡혀놓고는
아무 데나 눈에 띄는 건물 몇 군데를 들렸다.
이런 낭패가...... 황당하기 짝이 없다.
화장실이란 화장실은 죄다 잠겨 있는 게 아닌가.
일요일이라 가게 문을 닫은 곳이 많아 그러하리라.
마지막으로 마주친 7층 건물에 들어섰다.
역시나 1층에서 3층까지 모두 다 잠겨 있었다.
공연한 오기가 발동하여 4층으로 내달아 올라갔다.
천만다행으로 잠겨 있지 않는 화장실을 발견하였다.
헌데 이번에는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과 맞닥뜨렸다.
선명하고 붉은 글씨의 w.c 밑에 쓰여 있는
참으로 알쏭달쏭한 암호와 마주쳐 잠시 당황스러웠다.
한 쪽에는 101,
또 다른 쪽에는 111.
낮술에 거나하게 취한 탓이었을까.
요상 야릇한 암호를 해독하느라 진땀을 흘려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