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고위공직자 12명이 쌀직불금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지고 일괄사의를 표명함에 따라 감사원 내부의 인적쇄신론이 본격 점화될 전망이다.
사의를 표명한 고위공직자는 김종신, 이석형, 박종구, 하복동, 김용민, 박성득 감사위원 등 감사위원 6명 전원과 남일호 사무총장, 성용락 제1사무차장, 유충흔 제2사무차장, 김병철 기획홍보관리실장, 이창환 감사교육원장, 문태곤 고위감사공무원(본부 대기)이다.
◇일괄사의 표명 배경 = 이들이 일괄사의를 표명한 이유는 무엇보다 쌀직불금 감사 결과를 둘러싸고 감사원이 '신뢰의 위기'에 처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직불금 감사 비공개 결정과 청와대 개입 논란으로 감사원이 개원 이래 최대의 위기에 처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만큼 고위 공직자로서 도의적인 책임을 피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의를 표명한 감사원 고위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언론과 국민이 감사원의 쌀직불금 감사에 대해 미흡했다고 지적한 만큼 도의적인 책임을 지기 위해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김황식 감사원장이 새로 취임한 뒤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쌀직불금 사태가 터져 김 원장에게도 면목이 없다"며 "당시 감사원의 쌀직불금 감사결과에 대해선 떳떳하지만 고위 공직자들이 일단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최근 감사원 실무자협의회가 "감사원이 권력에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은 부인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입신양명을 위해 권력에 줄을 대거나 조직 발전을 저해하는 사람들에 대해선 과감한 인적쇄신이 있어야 한다"고 '쇄신론'을 제기한 것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 감사위원은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당당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한 생각이 든다"며 "직불금 감사의 실체는 국회의 쌀직불금 국정조사에서 드러날 것이고, 선배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감사위원 6명의 교체 여부다.
감사위원은 감사원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한다는 취지에서 4년 임기가 헌법에 명시돼 있으며 6명의 감사위원 중 내년 초 임기가 만료되는 김종신 감사위원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5명 모두 임기가 1년5개월 이상 남아있다.
김종신 위원의 임기는 내년 2월까지이고, 박종구 위원과 이석형 위원은 2010년 3월, 하복동 위원 2011년 11월, 김용민 위원 2011년 12월, 박성득 위원 2012년 4월 등이다. 따라서 본인이 사퇴하지 않는 이상 임기는 보장된다.
하지만 6명 감사위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함에 따라 최소한 선별적 교체는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감사위원 6명 중 새 정부 출범 이후 임명된 감사위원은 박성득 위원 1명뿐이고, 나머지 5명은 참여정부에서 임명됐다. 게다가 이석형 위원의 경우 최근 내부자 정보를 이용한 주식거래 의혹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또 박종구 위원은 지난해 쌀직불금 감사 비공개 결정 당시 주심위원을 맡았었고, 하복동 감사위원은 당시 제1사무차장을 지내면서 이호철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에게 감사내용을 보고해 국회 국정감사 과정에서 논란이 됐다.
감사위원 일괄사의 표명 이후 선별적으로 사표를 수리한 전례도 있다는게 감사원측의 설명이다.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당시 감사위원 6명이 재신임을 묻는다는 차원에서 사의를 표명했고, 3명이 교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법에 따르면 감사위원의 경우 감사원장이 대통령에게 면직 제청을 하면 대통령이 재가해 사표 수리가 공식 결정되고, 사무총장과 사무차장 등 나머지 고위공무원들은 감사위원회 의결을 거쳐 감사원장이 면직 제청을 하면 대통령이 재가를 내리는 수순을 밟게 된다.
이와 관련, 감사원 안팎에서는 감사위원 교체 여부에 대해선 청와대의 의중이, 나머지 고위공직자 6명에 대해선 김황식 감사원장이 사실상 재량권을 발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치적 입장과 코드에 따른 감사위원 물갈이가 아니냐는 논란이 빚어질 개연성도 다분하다.
일단 김 원장은 고위직 12명의 사의표명을 즉각 수용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쌀직불금 감사 경위에 대한 내부 감찰조사, 국회의 쌀직불금 국정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선별적으로 사표를 수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이달 말로 예정됐던 감사원 조직개편과 대규모 인사 방침도 11-12월 중에 단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감사원 관계자는 "고위직 12명이 일괄사의를 표명한 만큼 조직 개편 및 인사 시기도 늦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연합뉴스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