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내놓은 지 이틀 만인 21일 부동산 종합대책을 발표한 것은 미국의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실물경제의 침체 공포가 국내에도 덮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GDP)의 15%나 차지하는 건설업에 불어닥친 침체의 골이 깊어지고 있고 97조1천억 원에 이르는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의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 이를 내버려둘 경우 금융시장은 물론 내수와 투자, 고용 등 경제 전반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정부가 주택 투기지역 완화와 양도소득세 비과세 확대, 미분양 아파트와 택지 매입, 자금 지원 등 가능한 모든 대책을 망라함에 따라 건설업계의 숨통이 트이고 부동산발 경제위기를 막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까지 백화점식 지원을 하는 것이 건설업체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고 정부의 재정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강력한 부동산 규제로 미국의 금융위기를 촉발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국내로 번지는 것을 막았다고 자평해 왔는데 이를 일부 풀기로 한 것은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경기의 전망이 어두운 가운데 지금보다 많은 빚을 내 주택을 사는 사람이 늘고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 가계와 금융회사가 부실에 빠져 금융 불안을 가중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건설사에 공적자금 투입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대책의 골자는 수도권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의 일부 해제, 1가구 2주택자의 양도세 비과세 기간 연장, 건설사 보유 토지.공공택지 매입, 펀드를 통한 미분양 주택 매입, 회사채 발행 지원, 대출.어음 만기 연장 등이다.
지난 7월 말 현재 전국 미분양 주택이 사상 최고치인 16만595가구에 이르고 일부 건설업체의 도산설이 퍼지는 등 부동산 경기의 침체가 심각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국제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의 동반 침체로 확산되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건설업이 그 영향을 가장 먼저 받을 것이라는 점이 감안됐다.
실물경제의 중요한 축인 건설 부문의 침체는 지표상으로 이미 나타나고 있다. 올해 들어 건설 투자(작년 동기 대비)는 1분기 -1.1%, 2분기 -0.8%를 기록했고 건설 수주는 1분기 -3.9%에서 2분기 -6.1%, 7월 -13%, 8월 -7.6%로 급격히 위축됐다. 건설업종 취업자는 올 1~9월 2만9천 명이 감소했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제조업의 설비투자 전망 지수는 지난 7월 100에서 8월 98, 9월 99, 10월 96으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고 설비투자 증가율은 1분기 1.4%, 2분기 0.7%에 그치는 등 실물경제 지표 전반에 경고음이 들어오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올해 1분기 5.8%, 2분기 4.8%에 이어 하반기 3%대로 떨어지고 내년에는 정부가 예상한 5% 안팎보다는 낮은 3%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자 무역수지 흑자국인 중국의 3분기 경제성장률이 5년여 만에 한자릿수로 떨어지면서 우리나라의 수출에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되는 등 대외 여건도 나빠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선 건설 부문에 지원을 통해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정부는 이번 대책으로 건설업체들이 자금난을 덜고 위축된 주택 수요가 살아날 뿐 아니라 미분양 사태로 인한 금융권의 부실 우려도 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경기 부양의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LG경제연구원 오문석 경제연구실장은 "이번 대책은 부동산 가격이 과도하게 하락해 투매로 이어지면서 가계 부실이 커지는 최악의 상태를 막기 위한 조치로, 경기 부양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평가했다.
오 실장은 "부동산시장의 거품이 꺼지는 추세에서 그 속도를 조절하고 금융시스템의 위험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는데 주안점을 둬야 한다"며 "경기 부양은 재정이나 금리 등 거시정책 수단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 '퍼주기' 논란..투기지역 해제 부작용 우려
정부가 미분양 주택과 건설사 보유 공동택지, 토지 매입 등에 9조 원 가량을 투입하기로 한 것은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어 건설업체들이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고 금융권의 부실 우려도 커지는 상황에서 고육책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건설업체들이 특단의 자구 노력 없이 정부 지원에만 기대는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건설업체들은 무리하게 아파트를 많이 짓고 금융회사들은 PF 대출을 경쟁적으로 늘린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 송준혁 연구위원은 "기업들의 토지와 미분양 주택을 사서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며 "금융회사들은 자체적으로 기업의 신용 위험을 판단해 대출한 것인데 여기에 국가가 유동성을 공급해 위험을 줄여주는 것은 시장 원리에 어긋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수도권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를 일부 해제하기로 한 것도 논란의 불씨가 되고 있다.
투기지역이 해제되면 이곳에 있는 6억 원 초과 아파트를 구입할 때 적용되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현행 40~50%에서 60%로 높아진다. 또 채무상환 능력에 따라 대출금을 결정짓는 총부채상환비율(DTI) 40% 규제를 받지 않게 된다. 그만큼 금융회사에서 돈을 더 빌려 주택을 살 수 있게 된다.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234조6천억 원에 이르는 가운데 대출 금리가 연 10% 가까이로 치솟고 물가는 상승하는 등 실질소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대출 한도를 늘릴 경우 가계의 빚 상환 부담이 커지는 것은 물론 부동산 가격의 거품이 꺼질 경우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송준혁 연구위원은 "LTV와 DTI 규제는 금융회사의 건전성과 금융시스템 유지를 위해 도입한 것인데 이들 규제 때문에 부동산시장이 활성화되지 않고 부동산 대출의 연체율이 높아질 수 있다며 투기지역 해제를 통해 우회적으로 완화하는 것은 역설적"이라고 지적했다.
현대경제연구원 박덕배 전문연구위원은 "주택 가격이 하락하고 금융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투기지역 해제로 LTV와 DTI가 높아진다 하더라도 수요가 늘지는 의문"이라며 "하지만 향후 경기가 좋아진다면 국지적으로 다시 부동산 거래가 불붙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주택담보대출의 거치기간이나 만기 연장, 대출 금리의 기준이 되는 양도성 예금증서(CD) 금리의 인하 유도, 처분조건부 주택 대출의 상환 기간 연장(1년→2년) 등과 같은 대책은 대출자의 상환 부담을 덜어 줄 것으로 기대된다.(연합뉴스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