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가족인 삼정(參井) 정정례 시인<사진>이 고향을 주제로 쓴 첫 시집이 발간돼 서늘한 이 가을에 따뜻한 훈기를 전하고 있다.
그의 첫 시집 ‘시간이 머무른 곳’은 국립공원 월출산이 자리한 전남 영암의 소박하고 가식 없는 고향을 한편, 한편의 시로 그리고 있다.
마음이 고아서 ‘꽃보다 아름다운’ 삼정.
그는 고향이라는 채널을 통해 우리에게 고향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선물하고 있다.
알뜰한 서정시들을 모아놓은 ‘시간이 머무른 곳’.
그 곳에 가면, 사람이 사람을 서로 위하고 사랑하며 살았던 그 옛적의 ‘애틋한 정’을 발견할 수 있어 좋다.
국세동우회 이사인 임봉춘 세무사의 부인 정정례 시인은 10월12일 전남 목포에 있는 호텔 현대(에메랄스홀)에서 출판 기념회를 가졌는데, 그 까닭은 고향을 소재로 했기 때문.
삼정 정정례는 MBC문화센터 ‘시 교육반’에 다니면서 지난 2006년 여름에 ‘문학마을’을 통해 등단했지만 사실은 처녀시절부터 ‘문학소녀’로 주변에 알려 졌었다.
남편 임봉춘 세무사는 68년 공직(국세청)에 입문해 그동안 본청과 서울청에서 조사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그 시절에는 ‘연합조사반’과 ‘서울청 조사반’.
일선은 을지로, 남산, 수원세무서에서 근무했으며, 82년 구로세무서 법인세 3계장을 끝으로 명예퇴직 한 뒤 개업 24년을 맞고 있다.
장녀인 승지, 차녀 현정, 삼녀 연수는 모두 이화여대를 졸업한 동문자매이며, 막내 동근은 연세대를 졸업했다. 이들 1남3녀 가운데 시인 정정례의 문학성을 물려받은 것은 장녀 승지.
가족 모두는 투병에 있는 시인 정정례가 건강을 되찾아 두 번째 시집이 출간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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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기세등등해
우쭐대며 내달리고 있는,
KTX로 이름 고쳐 단
초특급열차
스쳐 지나친 풍경들까지
혹시 서운해 할까,
자리 좁혀 앉고 불러들여
꼬박 하루가 걸렸던
고향 길
화통에 검은 연기
절래절래 고개 흔들며 내뱉는 욕지거리에
선잠 깬 아이
입 막느라 때 묻은 적삼 헤치고
젖 물리던
완행열차 삼등칸,
·
반겨줄 얼굴들 차례로 뛰어나올 생각
가슴에 눈물로 어려
엿가래 왕사탕 껌팔이 장수
저마다 제 물건 팔아 달라 외쳐대는 소리도
텃밭 야생화같이 곱기만 하고
향기롭기까지 했는데
제 발소리조차 길가 한쪽에
내동댕이쳐놓고
제 멋에 취해 혼자 내달리고 있는,
어디서 누굴 만나려
정신없이 내달리기만 하는 걸까
겨울바람 아직도 남아
옷깃 들추며 싸하니 불고 있는데,
어디로 가야
그때 그 완행열차
삼등칸 그 자리에
다시 앉아
그때의 나를 만날 수 있을는지
아버지
무게를 이기지 못해
한쪽으로 어깨가 휜 나뭇가지처럼
많은 식솔(食率) 거느렸던,
때론 허겁지겁
벗어던지고 도망치고라도 싶었을
벼슬 축에도 못 드는
가장(家長)이라는 올가미 쓰고 산
아버지
그래도 단 한 번도 누굴 탓하지도
힘들어 못하겠다며 엄살부려본 적이 없이
가슴에 누룩 뿌려 삭혀
농익은 탁주 같던
우리 아버지
보릿고개
있지도 않은 가파른 언덕
눈물만 흥건히 배인 준령 허물어버리고
사는 맛 입 가득 돌게 사셔야 할 텐데
왜 꿈에라도 오셔
막내딸 손잡고
고향 길 한번 같이 걸어주지 않으시는 걸까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일까
지금도 잊혀 지지 않고
눈에 가득한,
땀내로 진동하던
아버지의 향기
널따란 황톳길 휘적휘적 걸으며
우리들 생각에 적셔져 계실
우리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