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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07. (토)

[時論]신고납부와 행정편의주의

박광수(朴光洙)한국관세사회장


관세에 대한 현행 신고·납부방식은 '93.12월 제29차 관세법 개정에 의해 시행됐다. 그 이전에는 세관장이 세액이 기재된 신고·납부서를 교부하고 납세자는 그 기재된 세금을 납부했으므로 명목상으로만 신고·납부였고 부과·과세와 다름없었다. 그러나 제29차 관세법 개정때 신고·납부서 교부를 폐지함으로써 세액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납세자에게 귀속되고 세관장은 다만 납세자가 납부하는 금액을 단순히 수령하는 사실행위에 종사할 뿐 전혀 책임지는 것이 없게 됐다.

관세는 과세가격에 세율을 적용해 계산한다. 관세의 과세가격은 WTO협약 제7조에 규정돼 있고, 동 조항의 시행을 위한 국제협약이 별도로 제정돼 있다. 관세의 과세가격은 원칙적으로 당해 거래의 지불가격에 의하나 공제요소와 가산요소가 있다.

그런데 그 공제요소와 가산요소는 거래조건과 거래양태에 따른 것이므로 복잡하고 애매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거래가격을 과세가격으로 삼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때에는 동종·동질물품의 거래가격에서부터 마지막으로 합리적 기준에 의한 과세가격의 순서로 적용해야 할 다섯가지 방법이 정해져 있어 순차적으로 따져 어느 방법에 의해 과세가격을 산출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세율은 관세율표의 품목분류에 의한다. 관세율표는 세계관세기구(WCO)의 국제협약에 의하며 6단위까지는 전 세계 공통으로 적용된다. 우리나라는 통계부호를 포함해 10단위로 분류하고 있다. 그런데 품목분류가 쉽지 않다. 특히 전자·정보제품, 복합·다기능 제품 등 신 기술 상품은 어느 부호의 물품으로 분류해야 할지 애매한 경우가 많다. 비록 6단위까지 세계 공통이라지만 그 이후는 국가마다 다르므로 외국의 분류사례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과세가격의 산정이 복잡하고 품목분류가 애매한데 신고·납부할 때 당하는 애로사항은 오로지 납세자의 몫이다. 세금을 부당하게 많이 내면 억울한 일이고, 적게 내다가 나중에 추징을 당하면 20%의 가산세를 물어야 한다. 과세가격이 잘못된 경우에는 5년동안, 세율이 잘못된 경우에는 2년동안 언제 추징당할지 모른다.

관세법은 납세자 편의를 위해 과세가격이나 품목분류에 대한 사전심사제도를 두고 있다. 그러나 그 사전심사는 수입신고를 하기 전에 미리 신청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신고·납부 도중에 확인해 주는 제도가 없다. 지금 내고 있는 세금이 제대로 내고 있는 것인지 확인받고 싶어도 심사를 신청하는 규정이 없다. 또한 사전심사를 받았던 물품도 재심사를 해 주지 않는다. 특히 품목분류에 대해 납세자는 전혀 권리가 없다. 품목분류의 변경은 전적으로 관세청장의 필요에 의해 관세청장 혼자만이 할 수 있다.

둘째, 납세자는 신고·납부 대신에 부과고지를 선택할 수가 없다. 부과고지 대상으로 지정하고 있는 물품이 여행자 휴대품, 관세법 위반 물품 등 세관장이 직권부과하는 물품이며, 납세자가 신청할 수 있는 경우는 중소기업체가 화주 직접신고하는 특수한 경우에 한정하므로 일반 수입물품에는 해당되지 아니한다. 따라서 납세자는 과세가격이나 품목분류에 자신이 없어도 속수무책으로 신고·납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관세법상 과·오납의 환급청구를 통해 다퉈볼 수도 없다. 납세자는 단순착오로 과다 납부했거나 이중납부한 경우에 한해 환급을 청구할 수 있을 뿐 신고·납부가 잘못된 경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다만 세관장이 확인한 경우에는 납세의무자의 청구가 없더라도 직권환급이 가능하다. 그런데 직권환급이므로 납세자는 세관장에게 확인해 줄 것을 요청할 수가 없다.

넷째, 세관장은 납세자가 납부하는 세액을 단순히 수령하는 사실행위에 종사할 뿐이므로 세관장 처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신고·납부분에 대하여는 심사청구 등 불복청구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잘못 납부된 억울한 사례를 시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불복청구를 조작하는 방법뿐이다.

이와 같은 신고·납부의 행정편의주의에서 정확한 납세신고를 유도하고, 선량한 납세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금년 4월부터 시행되는 보정제도를 적극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세관장은 납세자로부터 보정신청만을 기다리지 않고, 세관장이 관세청 통관전산시스템을 가동해 과세가격이나 품목분류 등 신고사항의 오류를 적극적으로 발굴·색출하고, 이를 납세자에게 알려줘 시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운영한다면 납세자뿐만 아니라 관세행정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금년 4월부터 시행된 경정청구제도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 제도는 신고·납부한 세액이 과다한 것을 알았을 때 신고·납부일로부터 2년내에 세관장에게 경정을 청구하는 제도로, 이번에 처음 도입됐다. 만일 제대로 운영만 된다면 불복청구까지 할 필요없이 납세자의 억울한 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획기적인 제도가 될 것이다.

이 제도가 활용되기 위한 요체는 첫째, 납세자가 납부한 세액이 과다한지를 인식하는데 필요한 충분한 정보를 접할 수 있어야 하고, 둘째, 관세청이 부정적·방어적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경정청구를 인용하는 길일 것이다. 과세가격과 품목분류의 판정이 전적으로 관세청의 전권에 속하기 때문이다.

※본란의 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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