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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2. (일)

기타

[寸鐵活仁]젊은 朴正熙와 月山 마을 주막집

장재철(張在鐵) 本紙 논설위원, 소설가


 

박정희 대통령이 이 곳 광주(光州) 상무대에 있던 육군 포병학교(砲兵學校) 교장 시절은 그로서는 의기충천(意氣沖天)한 젊은 호시절이었다.

여순반란사건(麗順叛亂事件)관련 좌익공산분자라는 혐의(嫌疑)가 완전히 풀리고 군부내(軍部內)에서도 앞길이 탄탄하게 열렸으니 기승(氣勝)하고 호걸풍(豪傑風)이 있는 그로서는 '해피엔드'의 도약(跳躍)의 시기였다. 그는 휴일에는 꼭 엽총을 들고 나가 사냥을 즐겼다. 처음에는 당번병(當番兵)과 운전병을 데리고 무등산이나 상무대(尙武臺)에서 가까운 서창면(西倉面)에 있는 송학산, 개금산을 주무대로 했다. 잘하면 하루에 '꿩', '산토끼'같은 것을 서너마리 잡았는데 돌아오는 길가에 가난한 농가에 들려 한마리씩 나눠주고 집에 들고 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광주시내 내노라 하는 부자(富者)나 기업가들이 초대하는 고급 요정에는 한사코 마다하면서도 농가(農家)에서 대접하는 마루바닥에서의 '막걸리'는 결코 마다하지 않았고, 더러는 마을 가까운 주막집에 가서 술자리를 벌리는 일도 있었다.

그런 일에 재미를 붙인 그는 혼자서도 산골 솔밭속에 있는 주막집을 찾게 됐다. 그때 서창면 백진리 월산마을 뒤에 꽤 깨끗한 주막집 하나가 있었다.

그 집에는 교양(敎養)도 있고 예쁜 얼굴의 주모가 있었는데 박 대령(朴 大領)은 그녀와 친숙해져서 자주 찾게 됐다. 그렇다고 무슨 딴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고 그 마을에 사는 몇사람 마음맞는 술친구가 생긴 것이다.

순박한 농민들과 마주 앉아 허물없는 대화속에 마시는 '텁텁한 막걸리' 몇잔에 오가는 '전라도 사투리'가 귀에는 낯설지만 그 꾸밈없는 순진한 모습에서 고향의 풍미(風味)를 맛봤으며 멀리 고향에 있는 친척들의 훈훈한 정감(情感)을 느꼈던 것이다.

남국(南國)의 시골마을의 푸르고 산뜻한 풍경(風景)과 무디고 허식이 없는 이곳 사람들의 순박한 언행(言行)이 그의 타고난 서민 기질(庶民氣質)에 부합(附合)돼 그 자신의 복실(樸實)한 생활철학(生活哲學)을 충족(充足)시켜 준 것이다. 그때 술자리를 같이 한 사람 모두가 지금은 저 세상 사람이 됐지만 박정희씨가 대통령이 된 뒤에 그 사람들의 술회(述懷)

"그 양반(박 대통령을 지칭)은 참말로 인정이 철철 넘치는 좋은 분이었어. 헐벗고 가난한 농부일수록 좋고 '무식하면 어떠냐'고 더 아껴주셨어. 그런 분이 나라를 다스리는 높은 분이 되셨응깨 이 나라는 곧 큰 부자도 가난뱅이도 없는 고르게 잘사는 나라가 될것닝께 두고 봐"하고 극찬을 했다.

그러나 16년간 대통령을 지낸 그가 많은 경제부흥(經濟復興)을 이루고도 비명(非命)에 갔으니….

필자는 한때 그 군정하(軍政下)에서 일하기가 싫어 20년간 해온 공직(公職)을 '헌신짝 버리듯' 했지만 그 분의 뒤를 이은 사람들의 대개가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들에 쌓인 눈을 밟고 가기)를 호란행(胡亂行^뒤범벅하고 어수선)했으니….

푼수(不足人)들의 망동(妄動)과 자유방종(自由放縱)이 억제되고 국민 경제가 무럭무럭 고속성장(高速成長)하던 그때가 사뭇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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