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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에 우는 꾀꼬리의 초성(初聲)'이라는 제목의 단막극(單幕劇)이었다. 일본 시고꾸(四國)의 어느 어촌 마을에 70살이 넘은 '부자 과부'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봄날밤 장성한 아들과 딸 두 남매를 자기 방으로 불러들여 말한다.
"나는 처녀때 윗마을 청년과 마음속 깊이 서로 사랑했는데 완고하신 아버지의 강권(强勸)에 못 이겨 너희들 아버지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너희들 두 남매를 낳고 서른도 채 못된 젊은 나이로 과부가 됐다. 나는 그때까지도 나를 못 잊어 홀로 사는 그 남자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어린 너희들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그때부터 사내가 된 마음으로 돌아가신 너희 아버지 몫까지 일을 해서 지금은 고을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됐고, 너희들 두 남매도 혼가를 시켰으니 내 할일은 다했고 너희들 아버지에 대한 책임도 벗었다. 그래서 이제부턴 나도 여자(女子)로 돌아가 이 집과 재산을 너희들에게 나눠 주고 지금 홀아비가 돼 늙어가는 첫 애인과 결혼을 하고 싶다. 그 집은 우리만은 못하지만 두 늙은이가 먹고 살만하니 아무 걱정말고 내 소원을 들어다오"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반대할 줄로만 알았던 아들은 입을 다물고 시집간 딸이 극구 반대를 했다. 젊어 고생으로 이뤄놓은 재산과 널리 알려진 열녀‧절부(烈女‧節婦)의 이름이 아깝지도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 노모는 고개를 설래설래 저으며 "나는 그런 허수한 이름이나 재산이 좋아 젊음을 헛되게 산 일은 없다. 어머니로서의 책임이 나를 붙잡았던 것이다. 이제 내 할일 다 끝냈고 쓸만한 노경(老境)에 말동무를 찾자는데 뭐가 어째서 안되느냐?"
결국 두 남매의 주선(周旋)(?)으로 두 노인은 맺어져서 새로 마련된 대밭(竹田)밑 새 집에서 잔치가 벌어지고 많은 마을 사람들의 축복속에 양가(兩家)의 자식들이 의형제(義兄弟)의 연을 맺고 웅성대고 있는데, 집 뒤 숲속에서 그해 들어 처음 우는 꾀꼬리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두집 아들, 딸들이 손을 맞잡고 사랑의 노래 '가고노도리(籠中鳥:새장 속의 새)'를 합창으로 부르는 라스트신(마지막 장면)은 퍽 시사적(示唆的)이고 감동적이었다.
이 이야기를 우리네 생활감정(生活感情)과는 안 맞는 '주책없는 얘기'라고 얼굴을 찡그릴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 여인의 애틋하면서도 자아실현적(自我實現的)인 충실하고 정직한 생활태도에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끼고 아낌없는 찬사(讚辭)와 갈채를 보내고 싶다.
비록 두 사람의 만년(晩年)에 꽃 피운 사랑의 실체(實體)가 순채꽃(蓴菜:연못속에 피는 暗紫色의 작은 꽃)의 줄기처럼 가늘고 연약한 것일지라도 그 되찾은 '새로운 청춘'에서 현실과 환상(幻想)이 알맞게 조화된 아름답고 소중한 삶을 경험하게 될 것이니….
가을날 집 마당에 놓인 널평상(平床)에 몸을 바짝 붙이고 앉아 손을 잡고 먼 하늘에 다시 차오르는 달을 바라보는 기쁨을 누가 말릴 수가 있겠는가….
인간 애정(愛情)의 강인(强靭)하고 순수(純粹)한 실상을 보는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