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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2.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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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寸鐵活仁]適材는 適所에 있어야 제구실을 한다

-우리 모두 삶의 振幅을 줄이자


해동청(海東靑, 매의 별칭)은 사납고 날랜 맹금(猛禽)이지만 새벽을 알리는 데는 늙은 수탉을 따를 수 없고, 아라비아産 한혈마(汗血馬, 註:달릴때 흘리는 땀이 핏빛을 띰)는 천하에 으뜸가는 명마(名馬)이지만 쥐를 잡게 하면 병든 고양이만도 못하다.

즉 용인(用人)은 마땅히 그 재능(才能)과 적성(適性)에 따라 할 것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 어떻게 닭을 시켜 새 사냥을 하게 하고, 고양이를 타고 산야(山野)를 달릴 수가 있겠는가.

나라 정부(政府)와 개인기업(個人企業)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의 역량(力量)과 적성에 따라 적소(適所)에서 일하게 해야 그가 갖는 역량과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가 있는데, 닭을 잡는데 우도(牛刀)를 쓰고 소를 잡는데 손칼을 쓰는 식의 인사(人事)의 난맥(亂脈)은 시정(施政)이나 경영(經營)에 큰 실손(失損)을 주고 이화접정(異花接楨)의 혼란(混亂)을 부를 수도 있는 것이다.

신라말의 은일(隱逸)의 대학자(大學者)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이 벼슬길에 오래 머물러 정사(政事)에만 골몰했더라면 그 불후지방(不朽之芳, 영원히 남을 명성)의 문명(文名)을 얻지 못했을 것이고, 충무공 이순신공(李舜臣公)으로 하여금 강학(講學) 학자가 되게 했다면 이 나라는 그때 벌써 왜(倭)의 속령(屬領)이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람은 그 자질(資質)과 분수(分數)를 알고 천명(天命)에 순종할 줄 알아야 한다. 제 자질이나 재능은 헤아리지 않고 그저 돌아가는 성세(聲勢)와 명리(名利)를 좇아 억척스레 돌진(突進)하다가 허방에 빠져들고 돌벽에 머리를 부딪쳐서 비명(非命)에 간 사람을 우리는 많이 보았다.

자유당 종말때 그 '귀하신 몸'인 아들의 총을 맞고 일가족(一家族)이 몰살된 이기붕씨가 그랬고, 과욕(過慾)이 부른 죄앙(罪殃)에 죽고 표몰(漂沒, 물에 빠짐)의 비참(悲慘)도 있었다.

중국(中國)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필부(匹夫)는 죄(罪)가 없다. 귀한 구슬을 가져서 죄(罪)가 된다'는 말이 있는데 그 출전(出典, 이야기의 근원이 적힌 책)을 보면 우숙(虞叔)이란 천민(賤民)이 귀한 벽옥(璧玉)을 갖고 있어 국주(國主)가 이를 구원(救願)했지만 이에 불응하고 큰 화(禍)를 당했다는 것. 이는 능력없는 필부(匹夫)가 분외(分外)의 고위직(高位職)에 있다가 망신(亡身)당하는 것을 경고하는 말이다.

지금 우리의 병통(病痛)은 분별(分別)없는 자아(自我) 시현욕(示顯欲)의 발산(發散)으로 인한 무질서와 혼란이고, 농부가 애써 밭에 뿌린 씨앗을 까마귀가 파먹는 꼴의 사회적(社會的) 비위현상(非爲現象)이다.

해바라기는 해가 안 뜨면 고개를 돌릴 수가 없고 나팔꽃은 나무를 감지 않으면 자라지 못한다. 나라와 사회에 밝은 빛(희망)이 비치고 지도층과 경영주가 그만한 덕의(德義)와 자성(資性)을 갖춘 Charm(매력)있는 사람이라면 국민과 직원은 당면한 어려움을 이기고 즐거운 마음으로 저마다의 능력과 제구실, 제몫을 다할 힘이 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벌린 입에 떡이 날아들어오고, 넘어진 김에 쉬어가고 하는 그런 안일(安逸)하고 순탄한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국민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단세위(但勢威)나 재리(財利)앞에 쉽게 무릎을 꿇는 그래서 잘 사는 안이(安易)한 현실(現實) 타협자(妥協者)는 不在此限(부재차한)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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