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어떤 날은 내가 마치 왕인 것처럼 공연히 으스대고 싶은 날이 있는가 하면 어떤 날은 "나 자신보다 낮은 사람은 세상에 단 한명도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대개의 사람들에게 수시로 교차하는 기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요즘 세상에, 따지고 보면 왕도 하인도 현실에는 없지만 자신의 마음을,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그 마음 안에는 왕이 있을 수 있다. 하인이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왕처럼 대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내가 왕이고 싶기도 하다.
거꾸로 말하면, 어떤 부류의 사람에게는 나 스스로 하인이 돼 주고 싶기도 하고 어찌할 수 없이 하인이 되기도 하며, 더러는 사람 위에 군림하려는 태도가 은연 중에 배어나오기도 할 것이다.
왕이 되고 싶은 때 누가 나를 깔보거나, 권력이나 어떤 힘으로 누르려 한다면 곧바로 머리에 쥐가 나는 스트레스를 받을 게다.
그 상대가 대항할 수 없는 존재라면 이내 하인의 기분으로 전락하고 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한사람쯤은 내가 하인의 기분임을 말하지 않아도 얼마만큼이나마 기분을 들띄워 줄 사람.
더러는 나를 왕으로 생각하는듯 시중을 들어줄 사람. 그런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은연 중이라도 혹시 안 해본 사람 있을런지?
우리 주위에서 둘러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남편과 아내가 아닐까 한다.
부부가 함께 생활하면서 왕과 하인의 역할을 바꿔가며 소꿉놀이하듯 살아갈 수 있다면 아마도 이들을 가리켜 '천생연분'이라 하지 않을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일년에 한 번쯤, 아니면 평생에 한번쯤은 천하의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을 온전한 왕이 되고 싶은 마음의 욕구를 채워줄 사람! 그 한사람을 누구나 마음속에 그리며 살아간다고 볼때 내 아내에게, 내 남편에게 나 자신이 그 한사람이기 위해 엄청난 아부를 해야 할 지도 모를 일인가 한다.
자칫 서로에게 함부로 대할 수 있는 것이 부부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생각하는 부부는, 두 사람이 하나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전제로 해, 서로가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가까이에서 이해관계를 따지는 것이 없이 서로 협력해 주는 것. 그것이 원만한 부부가 아닐까 한다.
혹시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마치 자신의 인생을 위한 부수적·희생적 가치의 존재로 여긴다면 개방화되고 세계화되고 어제가 바로 옛날이 될만큼 급변하는 현대를 살아가는 1인으로서 얼른 바꿔야 할 사고방식이 아닐까 한다.
생활 자체가 크고 작은 각종 집단의 일원으로서의 변화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집단에서 만나는 사람들 모두가 저마다의 인생을 엮어가는 개체인 점을 안다면, 그리고 저마다의 가슴에 왕으로서의 욕구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다면(인간의 존엄성을 인식할 줄 안다할 것이다) 끝없이 나를 낮추고 상대를 추켜세워 줄 때, 그 상대방의 보이지 않는 마음안에서도 왕으로서의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