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소리 속세 뜨락을 넘나듭니다. 한 소녀는 왼편 담 모퉁이에 앉아 담담한 세월의 자수를 말없이 뜨고 천주(天柱) 언저리에 만년 영욕이 푸른 이끼로 송글송글 맺혀있습니다. 속인은 뜨락에 앉아 눈을 감고 수 만리 퍼지는 불경소리와 철 지나가는 매미 합창 속을 거닐었습니다. 대웅전 오른편 기왓장 위로 시퍼런 하늘에 미소를 띤 뭉게구름이 하얗게 속인을 휘감고 새로 지어질 일주문 바닥으로 수많은 발자국이 정성으로 닳은 대지에 자비가 숨쉬고 문득 천폐(天陛)에 와 있는 순간 그득한 법구경이 다가왔습니다. “너는 너의 길을 따라 가라, 온전히 선하게 남을 위하며 살아야 하리” 황급히 깨어난 속인은 총총걸음으로 귀청(歸廳)하면서 조계사 뜨락을 뒤돌아보매 이름 모를 향기가 거기 있었습니다.
·천주(天柱):하늘을 괴고 있다는 상상의 기둥 ·천폐(天陛):제왕이 있다는 궁전의 섬 ·이름 모를 향기:속인의 가슴에 배인 만년 불경 빛나는 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