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검사 스폰서' 파문이 나날이 확산되면서 사건 장본인들의 '뒤틀린 우정'이 어떻게 파국을 맞았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제의 김형준(46·사법연수원 25기) 부장검사와 스폰서 김희석(46)씨는 고등학교 동창으로 30년 지기이다. 서울 용산에 있는 모 고교를 다닐 때 김 부장검사는 학생회장, 김씨는 반장을 했다.
적어도 주변인들 눈에 두 사람은 공부 잘하는 '모범생' 친구 사이로 보였다.
세월이 흘러 법조인과 사업가로 각자의 진로를 걷게 되자 이들의 관계는 '친구'에서 '검사와 스폰서 업자'로 변질됐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7월까지 김 부장검사와 김씨가 나눈 카카오톡에는 두 사람의 빗나간 행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있다.
김 부장검사는 다소 낯 뜨겁게 느껴질 정도로 매번 김씨를 "친구" "친구야"라고 불렀다.
두 사람의 우정이 그만큼 돈독해서라기보다는 금전적 도움 요청 등 '아쉬운 소리'를 할 때 '우리는 친구'라고 강조한 것으로 읽힌다.
김 부장검사는 지난 2월3일 오전 11시11분에 내연녀로 추정되는 곽모씨의 계좌번호를 김씨에게 보냈고, 김씨는 곧바로 "출근해서 바로 보내고 (카카오)톡 줄게"라고 대답했다.
이어 1시간 뒤인 낮 12시13분에 "5백 보냈다"라며 "내 전용 계좌에서. 입금자는 그냥 회사이름으로 했다.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라고 보냈다.
이들의 돈 거래가 친구끼리의 순수한 도움 주고받기로는 해석되지 않는 대목이다.
김 부장검사는 약 한 달이 지난 3월5일에도 곽씨에게 돈을 주라고 김씨에게 부탁했다.
그는 "어제 이야기한대로 내게 빌려주는 걸로 하고 월요일에 보내줘. 마음 완전히 되돌리려고 한다. 도와주라 친구"라고 보냈다.
이어 "송금은 OOO이름으로 내가 마련해주는거라 했으니 지난번 거 니가 보낸 거 알아서 같은 회사 이름으로 하면 안 되고"라며 '방법'을 구체적으로 일러주기도 했다.
사이가 벌어진 내연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김씨에게 돈을 보내게 했으며, 이런 부적절한 성격의 도움이 수차례 이뤄져왔음을 알 수 있다.
김 부장검사는 내연녀에게 '생일선물'로 오피스텔을 사주기까지 했다. 이 역시 자기 돈이 아니었다.
지난해 11월17일에 김 부장검사가 "선릉 대림으로 확정…2016년 1월5일경 입주. 바쁘겠지만 이달말 26일 생일이라니까 계약해주면 선물로 주고 일 안하게 하고 타이밍 좋겠다. 고마우이 친구"라고 보내자, 김씨는 다음날 '오케이'를 뜻하는 "ㅇㅋ"라고 화답했다.
이어 같은 달 25일에 "친구…아무래도 좀 떨어진 곳이 나을 듯. 광진 자양사거리 OOOOOO 1000만원에 65만원으로 하려고. 강남 괜히 계약하지 말게나"라고 오피스텔 지역을 바꿨다.
김씨는 "내가 가서 계약할까, 아니면 OO한테 돈을 보내줄까"라고 되물었다.
두 사람의 '이상한 우정'은 김씨가 실소유주인 회사의 대표 한모씨가 김씨를 사기(60억여원) 및 횡령(15억여원)으로 고소하면서 틀어지기 시작한다.
수사가 진행되자 김 부장검사는 김씨의 진술을 '모니터링'했다.
그는 7월10일 김씨에게 서부지검 담당 검사의 실명을 언급하며 "조사할 때 너랑 나랑 술 먹은 거만 물어봤어, 아님 2차도 갔느냐고 물어봤어"라고 확인하는 등 초조함을 드러냈다.
이어 "한OO는 매번 먼저 갔으니 자네와 나 남았을 때 내가 한 30분 마시다가 다음날 아침 회의 있어서 12시 넘으면 갔다고 해야 해"라고 요구하는 등 '위증 코치'에도 나섰다.
또 "검사 사표가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매장 당하고 변호사도 등록 안돼 요즘"이라며 절박감을 호소했다.
그는 이처럼 부적절한 거래를 계속하면서도 '총선'과 '공천'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정계 진출 의욕을 내보였다.
김 부장검사는 지난해 11월13일 카톡에서 "친구, 이번 진경준 검사장 주식 파동 보면서 나도 농지 문제는 백부로부터 증여받은 거지만 우선적으로 정리해야 할 것 같아"라며, "내역 보내니 한 번 검토해서 매각방안 좀 도와주라. 검사장 승진에도 그렇고 차후 총선에 나가려해도 공천부터 굳이 도움되는 건 아니라서"라고 전했다.
김씨는 검찰이 자신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지난달 8월26일을 기점으로 마음이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
잘 나가는 검사 친구에게 오랜 시간 물심양면의 지원을 하며 '보험'을 들었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결정적 상황에서 별 도움을 못 받고 감옥 신세를 지게 될 처지에 놓이자 강한 배신감을 느낀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로 그는 같은 달 29일 영장실질심사에 나오지 않고 도망간 후 한 언론사에 연락해 문자 메시지를 비롯한 김 부장검사 관련 자료를 통째로 넘겼다.
김 부장검사가 꼬치 꼬치 수사 상황을 물으면 "형준아, 왜 이리 걱정 하니. (너한테 불리한 내용) 얘기 안 했어"라며 감싸줬던 모습에서 180도 바뀐 것이다.
김 부장검사도 대검 감찰조사에서 매번 "친구야"라고 불렀던 30년 동창에 대해 "그 사람이 자꾸 내 이름을 팔고 다녔다"라며 비난한 것으로 알려졌다.
7일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두 사람은 통화를 하면서 서로에게 "바보같은 놈", "네가 한 게 있느냐"라고 하는 등 다투기도 했다.
10대 시절 순수하게 맺어졌을 이들의 인연은 추한 결말을 맞고 있다. 김씨는 이미 구속됐고, 김 부장검사 또한 사법처리 될 가능성이 높아 두 사람의 '잘못된 만남'은 결국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