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19일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우병우 민정수석을 직권남용과 횡령 혐의 등으로 검찰에 수사의뢰한 것과 관련해 감찰 진행 상황의 언론 누설 의혹을 빌미로 역공에 나섰다.
이는 당분간 우 수석을 그대로 안고 가면서 특별감찰의 적법성에 대한 문제 제기를 통해 현직 민정수석이 검찰 수사를 받는 초유의 사태를 정면돌파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날 오전 춘추관에서 '특별감찰관의 수사의뢰에 대한 청와대 입장'을 발표했다. 전날 이 감찰관의 전격적인 수사의뢰에도 줄곧 지켜왔던 침묵을 깬 것인데 청와대는 의혹의 당사자인 우 수석이 아니라 그를 조사한 특별감찰관에게 칼 끝을 겨눴다.
청와대가 문제 삼은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이 감찰관이 감찰 진행 상황을 특정언론에 누설했다는 의혹, 둘째는 특감 결과와는 관계 없이 애초부터 검찰에 수사의뢰를 할 의도였다는 의혹이다.
앞서 SNS 대화 내용을 인용해 감찰 내용 누설 의혹을 처음 제기한 MBC는 이 감찰관이 특정 언론사 기자에게 "특별감찰 활동이 19일이 만기인데 우 수석이 계속 버티면 검찰이 조사하라고 넘기면 된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김 수석은 "이 감찰관은 언론에 보도된 것이 사실이라면 특정 신문에 감찰 관련 내용을 확인해 줬으며 처음부터 감찰 결과에 관계없이 수사 의뢰하겠다고 밝혔고, 그대로 실행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며 "이것은 명백히 현행법을 위반하는 중대 사안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감찰관은 어떤 경로로 누구와 접촉했으며 그 배후에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는지 밝혀져야 한다"며 우 수석에 대한 이 감찰관의 전격적인 수사의뢰와 관련한 '배후설'을 제기했다.
실제 청와대 일각에서는 우 수석에 대한 검찰 수사의뢰 보도가 나온 것도 이 감찰관측이 어떤 의도를 갖고 언론에 관련 소식을 흘렸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별감찰관법 22조에 따르면 특별감찰관 등과 파견공무원은 감찰 착수 및 종료 사실, 감찰 내용을 공표하거나 누설해서는 안 되며 이를 어길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 정지에 처한다.
김 수석도 이같은 법 조항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이 감찰관의 감찰 누설 의혹이 사실이라면 중대한 위법행위이자 국기문란이라고 강조했다.
김 수석은 "언론의 보도 내용처럼 특별감찰관이 감찰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감찰 내용을 특정 언론에 유출하고, 특정 언론과 서로 의견을 교환한 것은 특별감찰관의 본분을 저버린 중대한 위법행위이고, 묵과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국기를 흔드는 이런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되기 때문에 어떤 감찰 내용이 특정언론에 왜 어떻게 유출되었는지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사실상 검찰에 수사 지침을 내린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감찰 누설 의혹을 '묵과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모종의 대응 방침을 밝힌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4촌 이내 친족, 청와대 수석비서관급 등의 비위행위를 감찰하는 특별감찰관은 직무상 독립성 보장을 위해 대통령이 임명은 하지만 마음대로 해임할 수 없게 돼 있다. 특별감찰관법 14조에 따르면 '직무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신체적·정신적 질환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나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사람', '파면 후 5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 등이 아니면 해임할 수 없다.
따라서 이 감찰관을 직접 내칠 수 없는 청와대가 감찰 누설 의혹을 검찰이 철저히 수사하도록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8일 대한민국수호천주교모임이라는 시민단체는 이 감찰관이 감찰 진행 상황을 외부에 누설했다며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한 상태다.
이는 동시에 청와대가 이번 특별감찰 결과의 적법성을 문제 삼아 '우병우 구하기'에 나선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감찰관이 특정 언론에 감찰 내용을 유출한 게 사실이라면 감찰 결과 자체에 대해 위법성 논란이 제기될 수 있고, 우 수석을 그대로 안고 갈 명분도 생긴다. 청와대의 인식대로 이 감찰관이 처음부터 수사의뢰라는 결론을 내린 채로 조사에 임했다면 부실 감찰을 문제 삼을 수도 있다.
이 경우 현직 청와대 수석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 초유의 사태에서 비롯된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상당 부분 덜어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청와대는 각종 의혹 중 사실로 밝혀진 것이 없는 만큼 '우 수석은 그대로 간다'는 기류에도 변함이 없는 상태다. 박 대통령도 지난 16일 개각에서 우 수석을 재신임한 바 있어서 경질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분석이다.
우 수석 본인도 지난달 20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무적으로 책임지라고 하지만 그럴 생각이 없다"며 사퇴론을 일축하고, "(검찰에서) 부르면 갈 것"이라고 한 바 있어 검찰 수사에도 '버티기'를 고수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만 이 감찰관 문제와는 별개로 우 수석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 그것 자체로 정권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 자진사퇴든 경질이든 우 수석의 거취와 관련한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감찰 유출 의혹을 문제 삼으며 이 감찰관을 공격하고 있는 새누리당 내에서도 정진석 원내대표가 "우 수석은 대통령과 정부에 주는 부담감을 고려해 자연인 상태에서 자신의 결백을 다투는 것이 옳을 것"이라고 하는 등 비박계를 중심으로 우 수석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