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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2016]두 번이나 판 뒤엎은 '타고난 승부사' 유승민

유승민(34)에게는 두 번의 인생 역전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이다.

중학교 때 태극마크를 달며 '탁구 신동'으로 불리던 유승민에게도 올림픽은 쉽지 않은 무대였다.

당시 세계 탁구계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중국 천하였다. 특히 왕하오(33)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만 20살의 나이로 첫 올림픽에 나선 유승민은 4강에서 스웨덴의 탁구 영웅인 얀 오베 발트너(51)를 누르고 결승에 올랐다.

결승 상대는 왕하오였다. 자연스레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잘했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때 유승민이 대형 사고를 쳤다. 세트스코어 1-1로 맞선 3,4세트를 2점차로 가져가며 유리한 고지를 점하더니 6세트마저 11-9로 승리,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국제탁구연맹(ITTF) 맞대결 전적을 살펴보면 유승민은 20년 가까운 선수 생활에서 왕하오와 16번 싸웠다. 14경기를 패하며 단 2승 만을 거뒀는데 이중 1승이 아테네 올림픽 결승이었다.

12년이 지난 2016년. 유승민은 다시 올림픽 무대에 섰다. 이번에는 선수가 아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후보 자격이었다.

IOC는 올림픽 때마다 선수들의 투표로 선수위원들을 선출한다.

선수위원이 되려면 23명 중 4명 안에 들어야 했다. 현역 시절 4번이나 올림픽을 경험했지만 종목 특성상 인지도가 높지 않은 유승민에게는 불리한 게임이었다. IOC의 엄격한 규제로 맘껏 선거 운동을 하기도 쉽지 않은 노릇이었다.

유승민은 선수들에게 마음으로 다가갔다. 오전 7시부터 밤늦게까지 선수들을 만나러 다니며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쳤다.

지겹도록 고충을 듣고 또 들었다. '당신이 당선된다면 우리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뭐냐'고 하는 선수들에게도 지친 기색 없이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19일(한국시간) IOC가 발표한 선수위원 투표 결과 유승민은 2위에 올랐다. 2004년 아테네 대회 결승전 때 그랬던 것처럼 안 될 것이라는 예상을 다시 한 번 보란 듯이 뒤집었다.

유승민은 "그때 금메달을 땄기에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는 것 같다"고 웃었다. 그는 "(탁구 선수로 뛰었던) 25년 간은 내 자신을 위해 했다면 지금부터는 위원회나 선수들, 스포츠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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