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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헌재 권한다툼 본격화

대법 업무방해죄 판례, 헌재 4년째 '만지작'

대법원과 헌재의 권한 다툼이 본격화된 가운데 지난 2011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전합)가 내린 노동조합의 업무방해 판결과 관련한 헌법소원 사건을 헌법재판소가 4년째 심리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헌재가 전합 판결 관련 사건을 이처럼 장기간 심리하는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법조계 안팎에선 대법원과 헌재간 권한 다툼이 심각해지면서 헌재가 전합 판결을 부정하는 취지의 한정위헌결정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정위헌결정이란 법원의 법률 해석에 대해 헌재가 한정 축소 해석을 하고 그 이상으로 적용범위를 확대하는 경우에는 위헌이라고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번 헌법소원 결정 장기화 사태는 표면적으론 "국민의 기본권과 관련된 한정위헌결정에 대해선 기속력이 인정돼야 한다"는 헌재의 기본 방침을 깔고 있지만, 사실상 양측의 힘겨루기가 반영된 것이라는 지적이 높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사법부 최고 정점 심판체인 전합 판결과 관련된 사건을 헌재가 4년째 선고하지 않고 있는 것은 각자의 권한을 존중하는 태도가 아니다"며 불쾌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반면 헌재는 앞서 언급한 기본 방침을 고수하면서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 '뜨거운 감자'된 현대차 전주공장 비정규직 노조 업무방해사건은?

18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비정규직 조합 간부들은 지난 2010년 3월 초 현대차 전주공장으로부터 협력업체 직원들 중 18명의 비정규직 직원들을 정리해고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러자 노조 간부들은 휴일 특근을 거부키로 결의하고 이를 일주일간 대자보나 문자메시지를 통해 조합원들에게 전달했다.

이후 실제로 3차례에 걸쳐 조합원들이 특근을 집단적으로 거부했고, 협력업체 공장을 운영하는 이들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1심에선 이들에게 집행유예 또는 벌금형이 선고됐지만 항소심에서 모두 벌금형으로 정리됐다. 이는 상고심에서도 받아들여져 원심의 형이 확정됐다.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후 노조 간부들은 항소심이 진행중이던 지난 2011년 12월 처벌 근거가 된 형법 제314조 1항에 대해 위헌심판제청을 신청했으나 기각됐다.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는 조항을 문제삼았지만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노조 간부들은 다음해 2월 17일 이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으며, 지금까지 헌재에 계류중이다.

이 사건이 1·2·3심에서 모두 유죄가 인정된 것은 지난 2011년 대법 전합이 내놓은 판례에 따른 결과였다. 당시 전합은 사업장 점거나 기물 파손 등 폭력이 수반되지 않는 단순파업도 정당한 쟁의행위가 아니면 거의 예외 없이 업무방해죄로 처벌해오던 기존 판례를 깨고, '전격성'과 '중대성'이라는 기준을 제시해 업무방해죄의 가벌성을 축소했다.

전합은 판결문에서 "쟁의행위로서 파업이 언제나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것은 아니다"면서 "전후 사정과 경위 등에 비추어 사용자가 예측할 수 있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져 사용자의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는 등 사용자의 사업계속에 관한 자유의사가 제압·혼란될 수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에 비로소 집단적 노무제공의 거부가 위력에 해당해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당시 이 판결은 파업과 관련한 업무방해죄의 처벌 범위를 종전보다 크게 제한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현대차 전주공장 비정규직 노조 간부들은 "단순한 작업 거부까지 업무방해죄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문제의식에서 헌법소원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이 같은 관점은 대법 전합 판결 당시 박시환·김지형·이홍훈·전수안·이인복 대법관이 내놓은 소수의견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이들 대법관은 "단순한 근로제공 거부는 비록 집단적으로 이뤄져도 적극적인 방해 행위로 사용자의 업무수행을 막고 법익을 침해하는 것과 동등하지 않아 단순파업은 업무방해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한다고 할 수 없다"며 단순파업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헌재가 주목하는 것도 이 소수의견으로, 지난해 4월께부터 평의를 열어 본격적인 내부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헌재 고위 관계자는 "여러 외국사례 등을 조사하기 위해 현재는 이 사건에 대한 심리를 중단하고 추정해놓은 상태"라며 "따라서 이 사건에 대해선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는데도 대법원이 한정위헌결정 가능성을 얘기하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라고 지적했다.

◇ 대법 "한정위헌결정 법적 안정성 심각하게 침해"…헌재 "한정위헌결정 기속력 인정 필요"

사실 헌재가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대법원과 헌재의 권한 다툼은 전면전으로 치달을 수 있다.

특히 대법원은 헌재가 이 사건을 4년째 심리중인 것은 사실상 법원 재판에 대해 위헌 심사를 하는 재판소원을 하려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1·2심에 이어 3심에서 전합까지 거쳐 판례가 형성된 것을 헌재가 존중하지 않을 경우 법원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법원 고위 관계자는 "헌재가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면서 "전합 판결까지 헌재가 한정위헌결정을 검토한다면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고위 관계자는 특히 "업무방해죄라는 게 노조의 파업 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영업장을 무단으로 점거하는 경우 등 그 범위가 상당히 넓고 다양하다"면서 "이런 여러 사정들을 감안하지 않을 경우 법적 안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 전격성과 중대성을 처벌 기준으로 제시한 전합 판결은 합헌적 법률 해석인 반면 한정위헌결정은 현행 헌법상 허용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법원은 법률 위반에 대해서, 헌재는 헌법 위반에 대해서 판단하도록 헌법에 규정돼 있는 만큼 서로의 권한을 침해하지 말자는 것이다.

하지만 헌재는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서라도 한정위헌결정에 대한 기속력은 인정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헌재 다른 고위 관계자는 "헌재에서 한정위헌결정이 난 사건 당사자가 대법에 재심을 청구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국민의 권리구제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면서 "국회에서 법을 개정해서 한정위헌결정의 기속력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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