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성스럽고 경건한 생일잔치를 만난 본 적이 얼마만인가.
칠순의 피아니스트 백건우(70)가 1일 경남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펼친 리사이틀은 이탈리아 작곡가 페루초 부소니(1866∼1924)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는 송덕문(頌德文)이었다.
'건반 위의 구도자'에 앞서 '건반 위의 시인'으로 통하는 백건우는 글 대신 피아노 음색으로 부조니의 공덕을 기렸다. '2016 통영국제음악제'의 최대 선물 중 하나였다.
명민하고 논리적인 부소니의 곡들을 서정적이면서도 투명하게 해석한 백건우 덕분에 만우절인 이날 생일을 맞이한 부소니가 거짓말처럼 현현하는 듯했다.
첫 곡인 엘레지 BV 249 중 제2곡 '이탈리아로!'(나폴리 풍으로)부터 부소니의 기운은 심상치 않았다. 다양하고 낯선 음계의 향연으로 그의 현대적인 풍모가 드러나는 이 곡을 백건우는 유려하면서도 변화무쌍(變化無雙)하게 탐험했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를 따른 환상곡 BV 253는 점차 가슴을 뻐근하게 눌러왔다. 고요하면서도 명징한 구조의 이 곡은 음색의 투명함으로 첫 번째 손에 꼽히는 백건우의 타건에 적확했다.
젊음에 BV254 중 제3곡 지그, 볼레로와 변주곡(모차르트를 따른 연습곡)은 오밀조밀한 매력으로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청명하게 시작하는 엘레지 BV249 중 제4곡 투란도트의 규방(간주곡)은 영롱한 굴림 뒤에 찾아온 익숙한 영국의 옛 노래 '푸른 옷 소매'가 귓가를 살랑살랑 감돌았다.
비제 '카르멘'에 의한 실내 환상곡 - 소나티나 6번 BV284가 특히 발군이었는데 오페라 장면을 활용한 이 곡에서 백건우는 웅크러든 음들의 만개를 보여줬다 마지막 그 낙화를 슬며시 보여주며, 환상적인 엄숙함을 선사한다.
1부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8번, OP. 31 No. 3과 2부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7번 OP.10 No. 3은 부조니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굳건하면서도 반가운 손님이었다.
바다를 좋아하는 백건우가 동해와 남해의 여러 섬에서 연주한 적은 있으나 '통영국제음악제'에서 피아노를 들려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일렁거리는 파도소리에 실린 듯 청아하게 울려퍼지는 백건우의 피아노 음색은 모험적인 '항해자' 부소니의 생애에 적확하게 가닿았다.
한편 통영국제음악제는 4월3일까지 통영국제음악당에서 펼쳐진다. 세계 최대 규모의 작곡가 네트워크인 국제현대음악협회(ISCM)가 주최하고 통영국제음악재단이 주관하는 '2016 세계현대음악제'(World Music Days)가 함께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