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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주가연계증권 손실' 배상 책임 '엇갈린 판결'

주가연계증권(ELS) 만기 직전 주식을 대량으로 팔아 손해를 봤다며 투자자들이 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대법원이 주식 매도행위가 시세조종으로 볼 수 있는지에 따라 다른 결론을 내렸다.

◇ "도이치은행 시세조정행위 부당거래"…파기환송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24일 오전 김모(61)씨 등 개인투자자 20명과 기관투자자 6곳이 각각 "530여만∼2억680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도이치 은행을 상대로 낸 상환원리금 청구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도이치 은행이 투자자들에게 수익 상환여부가 결정되는 만료일에 ELS 상품의 기초 자산인 KB금융 보통주를 대량으로 판 행위는 시세조종행위 내지는 부당거래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이 사건의 ELS는 투자자에게 상환될 금액이 기초자산의 상환기준일 종가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라며 "기준일 당시 KB금융 보통주의 가격이 손익분기점 부근에서 등락을 반복하고 있었으므로 도이치 은행으로서는 종가를 낮춰 수익상환 의무를 면하려고 한 동기가 충분히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도이치 은행이 해당 기준일에 KB금융 보통주를 판 행위를 보더라도 접속매매시간대 중 주식 가격이 올라간 오후에 집중적으로 팔았다"며 "특히 단일가매매시간에는 주식의 예상체결가격이 기준가격을 근소하게 넘어서는 시점마다 반복적으로 대량 매도했다"고 설명했다.

김씨 등은 2007년 8월 한국투자증권이 삼성전자와 KB금융 보통주를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ELS 상품에 투자했다.

조기상환을 받지 않으면 2년 후 만기상환 시 기초자산의 만기평가가격이 모두 최초기준가격의 75%를 넘을 경우 28.6%의 투자수익률을 보장하는 조건이다.

한국투자증권은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지급해야 하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도이치 은행과 ELS와 동일한 구조의 '주식연계 달러와 스와프계약'을 맺었다.

한편 만기평가일인 2009년 8월 26일 무렵 삼성전자 보통주 가격은 최초기준가격의 75%를 훨씬 웃돌았지만, KB금융 보통주는 최초기준가격의 75% 부근에서 등락을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만료일에 KB금융 보통주의 최종 종가는 ELS의 상환조건 기준가격인 5만4740원에 못 미치는 5만4700원으로 결정됐고 김씨 등은 약정한 투자원금의 128.6%가 아닌 74.9%만 돌려받는 손해를 입게 됐다.

이에 김씨 등은 도이치 은행 측이 만료 직전 KB금융 보통주를 대량 매도하는 바람에 주가가 내려갔다며 소송을 냈다.

1심은 만기상환조건인 기준가격 5만4740원 근처에서 등락을 지속하는 상황에서 KB금융 보통주만 대량 매도, '시세를 변동시키는 시세조종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은 시세조종행위가 아니라 위험회피와 상환재원 마련 목적의 정당한 거래라는 은행 측 주장 받아들여 1심과 달리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 "BNP파리바 은행 손실 책임 없어"…상고기각

반면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은 이날 오후 충남 공주의 한 새마을금고가 BNP파리바 은행을 상대로 낸 상환금 청구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새마을금고는 2007년 10월 삼성전자 보통주와 신한지주 보통주를 기초자산으로 하고 각각 최초기준가격을 55만2000원과 6만4200원으로 해서 자동조기상환 기회를 갖는 현대증권의 상품에 2억원을 투자했다.

해당 상품은 만기기준일인 2009년 10월 종가가 모두 최초 기준가격의 75% 이상이면 원금 및 28% 수익을 지급하고 만기까지 한 종목이라도 만기기준일 종가가 최초기준가격의 75% 미만이면 투자자가 원금 손실을 떠안는 구조다.

한편 현대증권은 BNP파리바 은행 측과 동일한 구조의 파생금융상품을 매입하는 '주식연계 스와프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만기기준일 무렵 삼성전자 보통주 가격은 기준치를 훨씬 웃돌았지만, 신한지주 보통주 가격은 최초기준가격의 75%인 4만5651원 부근에서 등락을 반복했다.

하지만 만기기준일 기준 신한지주 보통주의 최종 종가는 상환기준가격에 못 비치는 4만5450원으로 결정됐고, 결국 새마을금고 측은 원금에 못 미치는 14억9000여만원을 받아 원금의 약 25%의 손실을 입었다.

이에 새마을금고 측은 "BNP파리바 은행 측이 ELS의 기초자산인 신한지주 보통주를 대량 매각해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냈다.

하지만 대법원은 BNP파리바 은행 측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BNP파리바 은행 측의 주식 매도는 주가 등락에 따라 기초자산 보유량을 조절해 위험을 회피하고 상환재원을 마련하는 금융기법인 '델타헤지'의 일환으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BNP파리바 은행 측의 주식매도행위가 있었고 신한지주 보통주의 주가가 만기상환기준가격인 4만5651원에 못 미치는 4만5450원으로 형성돼 새마을금고 측에 손실이 발생했다"고 인정하면서도 "BNP파리바 은행 측의 주식매도 행위가 델타헤지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 거래이거나 주가를 기준가격 아래에서 인위적으로 유지시킨 시세조종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BNP파리바 은행 소송은 델타헤지의 원리에 따르면서도 기초자산의 매도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가장 줄일 수 있는 조치를 취했으며 처분 가격도 평균 처분가격 이상이고, 처분물량도 한국거래소의 'ELS 헤지거래 가이드라인'을 충족하는 등 시세조종이나 부정거래를 했다고 볼 여지가 없다는 점에서 도이치 은행 소송과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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