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청장! 세무사회장에 출마해 볼래?”
현직을 마치고 나온 2005년 1월 하순, 지방국세청장을 지냈던 선배분들이 모여서 서로 친목을 다지기 위해 만들어진 ‘청우회’에서 필자에게 참석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 분들 대부분이 현직에 있을 때 필자가 직접 모셨거나 먼 발치에서 봐왔던 훌륭하신 선배님들이어서 한 자리에서 직접 만나 뵐 수 있겠다는 들뜬 마음으로 참석했다. 아울러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고 큰절까지 올렸다.
그랬더니 선배님들께서는 나에게 무사히 현직을 마무리하게 되어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격려까지 해주셔서 참으로 고마웠다.
그 때 필자가 사무관 시절에 직접 모셨던 주정중 선배님께서 뜬금없이 한 말씀 해주셨다.
“조용근 청장! 당신이 이번 세무사회장에 한번 출마해 보면 어떨까?”
그때 필자 옆 자리에 함께 하셨던 임향순 선배님께서 “그래 이번엔 내가 한번 출마하고 그 다음에 한번 도전해 보시게”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렇잖아도 이번 세무사회장 선거에 부회장 러닝메이트가 되어주지 못해 미안해하던 차에 그런 이야기를 해주시니 나는 몸둘 바를 몰랐다.
당시 필자의 생각으로는 선배님들께서 그냥 흘러가는 단순한 덕담으로 생각하고 그냥 웃어 넘겼었다.
그리고는 그 날의 그런 이야기를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로부터 1년반이라는 세월이 흐른 2006년 한여름에 필자는 예나 다름없이 청우회 모임에 참석했었는데 그 때 참석하셨던 선배님들께서 작당을 한 듯이 다음해 2월에 있을 세무사회 회장 선거에 출마하라고 강권하셨다.
정작 필자의 생각은 들어보지도 않으시고….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임향순 회장 후임으로 마땅한 분을 찾으시다가 여의치 않으니 결국 부족한 나에게까지 내려오게 된 것이란다.
그때 필자는 충격적인 그 말씀 한마디에 몹시 당황했다.
평생 선거라곤 한번도 치러보지 못한 능력도 자질도 부족한 필자는 스스로 나 자신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곤혹스러웠다.
그렇다고 훌륭하신 선배님들 명령을 거역할 수 없어 일단 생각해 보겠다고 어정쩡한 답변을 하고 돌아왔지만, 왠지 자신이 없었다.
당시 역대 세무사회 회장들 중에는 국세청 말단 출신 고위직 자리에 계셨던 분들이 당선된 사례는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저런 고민만을 거듭하다가 어느덧 한두달을 흘러 보냈다. 그 후에도 선배님들께서는 거듭 나를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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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근 이사장은 세무사회장 당시 회원화합을 활성화하고, 나눔과 섬김을 본격 실천함으로써 세무사의 위상을 눈에 띄게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고 있다.<세무사회장 취임 당시 사랑의 쌀 전달식> |
결국 그 해 가을에 회장 후보 출마를 결심하게 되었고 세무사회에서 실시하고 있는 각종 행사에 참석해서 얼굴 알리기에 바빴다.
참고로 세무사회장 선거는 타 전문 자격사단체들의 선거 방식과는 달라 세무사회 전체 등록회원들의 직접선거로 이루어지는데, 회원 대부분이 필자가 잘 모르는 세무사 순수 고시 합격자인 반면에 국세청 출신 경력 세무사들은 절반도 안 되었다. 그나마 필자를 잘 모르는 세무사가 상당수였다. 그러니 자연스레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또 그때만 해도 필자는 세무사로 개업한 지 일년도 채 안 된 신출내기였기 때문에 더더욱 자신이 없었다.
세무사회안에 있는 여러 임의단체들의 연말연시 각종 행사에 부지런히 다녀 내 얼굴 알리기에 온 신경을 썼으나 반응들이 별로였다.
그런 열악한 상태인데도 알 수 없는 이상한 자신감이 내 마음속에서 샘솟았다. 그리고 질 때 지더라도 정말 깨끗한 선거를 한번 치러보고 싶었다.
상대 후보를 깎아 내리거나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아예 선언해 버렸다. 그랬더니 선거캠프에 있는 참모진들은 이런 나의 결정을 강하게 반대했다.
“말도 안됩니다. 지금 우리는 다른 후보들에 비해 누가 봐도 열세인데 상대 후보를 비방하기는커녕 칭찬해 준다니요. 조 후보께서는 진짜 회장 출마에 뜻이 있습니까? 아니면 이번에는 연습이고 다음을 노리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전 지금 그 누구보다 이번 선거에서 이겨야겠다는 열망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두고 보십시오.”
그럼에도 참으로 희한한 것은 선거운동을 하는 두 세달 동안 단 한 번도 내가 떨어질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저 자리는 나를 위해 하늘이 예비한 자리라고 생각하고, 모든 일정을 자신감있게 소화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들이 상대 후보를 위축되게 하지 않았나 싶다.
<계속>-매주 水·金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