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을 깬 성용욱 국세청장 퇴임은, 부인과 관련된 권력형 비리 연루혐의가 주된 이유였지만 '비전문인 국세청장'에 대한 실망이 겹쳤기 때문이다.
이낙선-오정근-고재일-안무혁 등 역대 군 출신 국세청장들이 '세금 문외한'이었음에도 나름대로 국세행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지만, 성용욱 국세청장은 기대치를 충족 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민원실환경개선과 관련된 안 좋은 첩보가 전두환 대통령 임기말 청와대로 계속 날아들었고, 급기야 노태우 대통령 대선캠프와 대통령직 인수위에서까지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1988년 3월 5일 노태우 대통령은 서영택 재무부 제2차관보를 국세청장에 전격 임명했다. 안무혁 국세청장 취임 7개월만인 1982년 12월부터 안무혁 청장과 호흡을 같이 해오던 지창수 국세청 차장은 차장으로만 5년가까이 있었지만 청장 물망에는 오르지 못했다. 존재감 부재 등으로 '청장깜'으로는 주목 받지 못한 것이다.
서영택 7대 국세청장은 대전·대구국세청장과 국세청 간세국장, 재무부 세제국장등 국세청과 재무부를 오가며 잔뼈가 굵은 정통 재무관료다. 그러나 서울 상대를 졸업하고 고등고시(행정과·13회)를 패스한 안정된 경력을 가졌지만 세정가 안팍의 시각은 그리 선선하지는 않았다. 노태우 대통령과 같은 TK(대구 경북)출신이고 동문(경북고)이라서 국세청관료들을 젖히고 국세청장이 됐다는 여론이 없지않았다.
서영택 국세청장은 취임 직후 올림픽 관련 사업자들에 대한 세무조사 유예와 부동산투기자 엄정대처를 공언한다.
취임 한달이 채 안 된 1988년 3월 29일 '5공청산' 신호탄이 검찰에서 날아들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친동생이자 5공 시절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을 역임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전경환 씨가 탈세 및 횡령 혐의로 검찰에 소환된 것이다. 곧 이어 전두환 전 대통령은 퇴임 한달 보름 여만인 그 해 4월 23일 모든 공직에서 사퇴했다.
'5공청산'에 시동을 건 노태우 대통령에 의해 국세청장이 된 서영택 국세청장은 국가적 대사인 '88올림픽'을 세정차원에서 지원하고, 전국적으로 만연한 부동산투기를 그냥 좌시하지 않겠다는 점을 수시로 공언했다. 취임 한달 여만에 부동산투기자 명단(39명)을 공개, 부동산투기에 대한 국세청 의지를 재확인 시켰다.
국세청이 부동산투기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던 1988년 5월 삼성그룹이 고(故) 이병철 회장 상속세 150억 원을 자진납부해 사회적으로 큰 화제가 됐다. 당시 '상속세 150억 원'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큰 금액인 데다 우리나라 최대재벌그룹 총수의 상속세라는 점과 '삼성'과 '이병철'이라는 상징성이 국민적 관심도를 제고 시킨 것이다.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 등에서는 기업규모에 비해 세금이 너무 적다고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지만 미풍에 그쳤다. 이는 전례가 없는 거대금액을 자진해서 납부한 데다, 일반 국민들의 삼성에 대한 이미지가 나쁘지 않은 점 등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계속>
<서채규 주간> seo@tax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