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지팡이를 짚고 딸은 그런 아버지의 뒤를 따라 조심스레 걷고 있다. 고향에 있는 추억의 장소와 시장을 돌아다닌다. 딸과 함께 막걸리도 한 사발하고 아버지는 기분이 몹시 좋아졌다. 너무 많이 걸었나 보다. 딸이 아버지에게 등을 내민다. 60대의 딸이 90이 넘은 아버지를 업고 걷는다. 야윈 아버지의 무게에 딸의 코끝이 찡하니 아려온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하나 아버지의 시대에는 아들의 존재가 귀한 대접을 받았다. 거꾸로 딸의 존재가 약간은 무시된 측면도 부인할 수가 없다. 아들, 아들, 아들이 그렇게 좋아? 딸이 묻는다. 좋지, 너도 알다시피 아들이 5대 독자 아니냐. 아버지는 겸연쩍은 듯 아들이 귀한 손임을 강조한다. 딸은 어때? 약간은 어리광을 부리며 딸이 질문한다. 아버지는 주저 없이 대답한다.
“암만 우리 딸 최고지.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간디. 딸아 사랑한다.”
사실 아버지는 애지중지하던 아들 집에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아들이 사는 도시는 도저히 답답해서 못살겠단다. 100에서 5이 모자란 연세인데도 아버지는 지팡이를 의지하고 잘도 걷는다. 화면에 나타난 걷는 모습이 부럽고 가슴 시리도록 짠하다. 일전에 병문안 갔던 큰어머니는 걷지 못할까봐 노심초사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몸을 거뜬히 지탱하던 걸음을 잃어버릴까봐 깊은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병상에 누워있는 큰어머니도 어서 몸을 일으키고 다시 걸을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추운 날 이웃집 잔치에 우리 집을 빌려줬고 난 차가운 방에 누워있었다고 한다. 울고 있던 아기인 나를 누군가 안아서 올렸는데 왼다리가 축 늘어진 채 반응이 없었다. 오른다리는 외부의 자극에 곧잘 반응을 보이는데 왼다리는 묵묵부답이었던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어머니는 움직이지 않는 내 다리를 살리려고 용하다는 침술사와 안마사를 찾아 백방으로 수소문하며 돌아다녔다. 그 당시를 회상하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신파극이 되고 만다.
내 또래의 사람들이 소아마비가 많은 것을 보면 그때에 유형처럼 번졌던 것 같다. 어머니 뿐만 아니라 나처럼 소아마비를 앓는 자식으로 인해 부모들이 근심으로 애가 탔을 것이다.
한번은 초등학교 시절 여수병원에서 다리 수술을 했는데 어머니께서 깁스한 나를 얻고 배를 타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얼마나 무거웠을까. 또 한 번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백수시절에 서울대학 병원에서 뼈를 늘리는 수술을 받았다. 아무튼 이렇게 걸을 수 있는 것은 수술의 도움이 컸다고 본다.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불편하고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다리로 인해 속상한 적이 많았다. 달리고 싶었다. 이소룡 영화를 보며 이소룡을 닮고 싶었다. 축구도 하고 싶었다. 왜 내가 잘 할 수 없는 것만 더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운동장에서 축구하고 있는 벗들과 어울리고 싶었는데 나는 그들이 맡겨 놓은 가방이나 옷이랑 지키며 구경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걷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마음껏 뛰고 싶었다.
운동회가 돌아오면 즐거우면서도 달리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씁쓸하기도 했다. 나 말고도 마을 대항별 이어달리기 시합 때면 주눅이 들어 의기소침해지는 친구가 있었다. 내 친구 호성이다. 1학년부터 6학년 때까지 무조건 이어달리기에 나가야 했던 그다. 다른 마을은 달리기 할 사람이 여럿 있었지만 우리 마을은 그와 나 둘 밖에 없었다. 내 다리가 불편하니 그가 달릴 수밖에. 사실 그 당시에 그는 달리기 실력이 썩 훌륭하지는 못했다. 공교롭게도 바로 앞에 달리는 여자 동창은 엄청 잘 달렸다. 그녀가 기껏 벌려 논 차이를 호성이가 뛰면 거의 추월당하고 마는 것이었다. 구경꾼들의 함성소리 속에 그가 달릴 때 마다 터져 나오는 아쉬움의 탄식소리.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달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가 부러웠다. 그런데 그는 자신 때문에 좋은 성적을 날려버렸다고 자책하고 있었던 것이다. 운동회 때 달리기가 고역이었다고 말하는 친구를 보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그 일이 전화위복이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호성이는 그 이후로 운동에 열심이었고 또한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우리 마을이 작은 마을인지라 선수층이 엷은 면도 있었으나 워낙 출중한 실력이라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젊은 선수와 같이 뛸 정도다. 그리고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축구 감독을 맡아 우수한 성적을 낼 정도이니 마을에 대한 애향심과 운동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무조건 달려야 했던 아픔과 좌절을 딛고 피나는 노력으로 일취월장한 실력을 갖추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의 뛰어난 운동실력에는 내 공이 보태진 것이 아니겠는가. 그가 인정할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비록 작은 키에 왜소하지만 나를 거뜬히 업고 돌아다녔다. 그리고 가족의 울타리를 지켜내려고 모진 농사일도 억척같이 해왔던 분이다. 어머니의 다리는 탈나지 않는 무쇠 다리인 줄만 알았다. 아무리 혹사해도 괜찮은 줄 알았다. 언제가 부터 어머니는 걷는 것이 부자연스럽고 고통이 밀려오는지 느릿느릿 걸어 다녔다. 걸어 다닐 때마다 무릎에 전달하는 통증으로 일그러지는 아픔을 남모르게 감추고 있었을 것이다. 나를 업고 사방팔방 걸어 다녔던 그 다리. 좀처럼 탈나는 일이 없는 줄 알았는데 내 몸의 무게가 저리 무릎의 연골을 갉아먹고 있었구나. 이 못난 놈 키우려고 삭아진 연골로 인해 뼈가 부딪치는 고통을 견디고 있었구나. 어머니는 지금 병원에 있다.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마치고 재활 치료 중에 있는데 통증이 아직 가시지 않는 모양이다. 걱정이 되어 안부를 전하는 아들에게 오히려 자식 며느리들이 고생 많다고 되레 집안일 걱정을 하신다. 처음에는 줄기세포 시술을 받았지만 아직 상용화 되지 않았는지 고가의 비용만 들어가고 효과는 미미했다. 장모님도 무릎이 아파 통증으로 고생하시다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는데 지금은 아주 좋아지셨다. 장모님의 사례도 있고 해서 인공관절 수술을 권유했고 이렇게 수술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허리가 문제라니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다. 걷는다는 것은 무릎도 중요하지만 못지않게 허리도 제 역할을 해주어야만 잘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술로 고생인데 허리까지 수술을 받게 되면 얼마나 힘이 들지 걱정이다.
‘어머니,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 나를 업고 꼿꼿이 걷던 그 때의 허리와 다리로 돌아오게 해주세요. 제발!’ 간절한 나의 기도가 꼭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
걷는 것이 싫을 때도 있었다. 균형이 맞지 않아 절룩거리는 걸음을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의 걸음을 따라오던 그 눈길. 내가 무슨 슈퍼스타도 아니고 내 걸음을 흉내 내던 반갑지 않은 일부 광팬들. 그들의 관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냥 보통사람이고 싶었다. 그 보통사람이 얼마나 행복하고 위대한 것인지는 지금에 와서야 깨닫고 있지만 말이다. 안 아픈 사람이 어디 있으랴. 누구나 말 못할 아픔과 비밀 하나씩은 간직하고 있으리라. 그러니 보통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얼마나 큰 욕심인가를 알게 된다. 제주장애인요양원에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걷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걷고 있는 내가 달리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이 어쩌면 사치스러운 욕망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나는 휠체어를 탄 누군가를 밀어줄 수 있는 다리가 있다.
비록 반듯하지 못한 비틀거림이 있을지라도 나는 걸을 수 있는 그야말로 보통사람인 것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 혹은 마음의 방향에 따라 세상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가끔 풍 맞은 사람이 불편한 보이는 다리를 이끌고 걸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몸에 마비가 와서 걸음이 부자연스럽고 위태롭게 보인다. 옛날에 거만하고 반듯한 걸음을 잃어버린 것이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옛날에 그 화려했던 걸음을 되찾으려고 어쩌면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걸음을 유지하려고 저리 열심히 걷고 또 걷는 것이리라. 걸음을 잃어 본 사람은 안다.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일인가를. 그러나 걷기 시작하면서 걸음의 소중함을 망각한 사람은 걷는다는 것에 대한 위대함을 놓치고 만다. 근심을 해본 사람이 근심 없음이 얼마나 편한가를 알고, 아파 본 사람이 아프지 않음에 대한 평안을 알듯이 걸음을 잃어봐야 걸음의 행복을 알게 될 것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사람도 있다. 그 친구들을 생각하면 걷고 있는 나는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스핑크스 수수께끼에 의하면 인간은 아침에 네발로 걷고 낮에 두발로 걷고 저녁에 세발로 걷는다고 했다. 어떻게 걸어가든 무슨 상관인가. 비록 절름발이 걸음일지라도 걷는 나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