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못 태어난 것 같다. 세상이 너무 무섭고 내가 감당하기에는 벅차다. 엄마한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떠난다."
10일 서울북부지법 법정에서 박모(26·여)씨의 유서가 낭독됐다. 이어 박씨의 반성문도 읽혀 내려갔다.
"깊숙히 반성하고 사죄하고 있다. 다시 그 상황을 되돌아 생각하면 온몸이 떨린다. 사건 발생 후 조금씩 달라지려고 노력 중이다."
이날 박씨는 동반 자살을 시도하다 혼자 살아 남은 죄로 법정에 섰다.
박씨는 유치원 때 여름캠프에 갔다가 골프장에서 날아온 골프공에 머리를 맞았다. 뇌수술을 하고 6개월간 입원했다.
악재는 이어졌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의 외도로 부모님이 이혼했다. 박씨의 어머니는 신장 장애 5급으로 일주일에 3번 투석을 위해 병원에 갔다. 4일은 파출부 일을 해 박씨와 살아갔다.
곰팡이 냄새 나는 반지하방에서 박씨는 늘 혼자였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어머니를 위해 성공하고 싶었지만 남들이 쉽게 하는 일도 박씨에게는 늘 어려웠다. 내성적이었던 박씨는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해 전학을 가기도 했다.
이후 동물병원과 백화점 화장품 코너 등에서 일했지만 계산을 잘 못하고 실수를 많이 해 몇개월만에 쫓겨나기 일쑤였다. 또래 친구들은 사회생활을 잘하는데 왜 나만 그럴까 점점 우울해졌다. 박씨는 다른 사람들이랑 있으면 본인만 피해자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박씨는 우울증을 극복해보려고 정신과에서 상담도 받아보고 유기견 보호소에서 봉사도 했다. 하지만 소용 없었다.
그러던 지난해 11월, 박씨는 자살 극복을 위한 온라인 카페에 가입했다. 비슷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곳에서 박씨는 심모(24)씨를 만났다.
심씨는 자신의 얘기를 많이 했다. 자신이 과거 동반자살을 시도했던 적이 있고 고통 없이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함께 하자고도 했다.
그렇게 연락을 주고 받다 이들은 '함께 떠나기'로 했다.
지난해 12월23일 오후 4시께 만나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모텔에 방을 잡고 범행 도구도 함께 구매했다. 맨정신으로는 어려울 것 같아 함께 술을 마시고 들어왔다. 함께 각자의 자살 도구를 만들었다. 박씨가 초조해하자 심씨는 신경안정제를 줬고 박씨는 이내 잠들었다.
그 사이 심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울북부지법 형사13부(부장판사 이효두)는 국민참여재판에서 심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용이하게 한 혐의(자살방조)로 기소된 박씨에 대해 선고유예를 선고했다고 10일 밝혔다.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 8명은 박씨의 혐의가 유죄이고 심신미약 상태가 아니었다고 의견을 모았다.
재판부는 "배심원들이 박씨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자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며 "박씨가 진심으로 어리석은 행동을 뉘우치고 있는 것 같다고 판단했고 전과도 없고 성행이 악한 것을 보이지 않는 점, 인생을 포기하기에는 젊은 점 등을 참작했다"고 판시했다.
또 "동반자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심씨가 더 주도적, 적극적 역할을 한 점이 박씨의 양형에 유리한 정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옳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검사는 앞서 법정에서 "박씨의 조력, 동조가 없었다면 적어도 심씨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며 "심씨는 박씨가 '너만 믿을게. 날 잘 리드해줘'라고 수차례 얘기하자 한층 더 고조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박씨는 카카오톡으로 문자를 주고 받으며 자살을 준비하고 장문의 유서를 작성했다. 장소도 직접 정하고 무거운 자살도구를 같이 들고 날랐다"며 "심신미약의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박씨의 변호인은 "심씨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자살을 권유하며 한달 이상 박씨를 설득했다"며 "구체적인 자살 방법을 박씨에게 가르쳐줬고 스스로 자살할 도구를 준비했다"고 반박했다.
이어 "아프지 않은 정상적인 사람이 자살하려는 사람을 말리지 않았다면 문제이지만 심각한 우울증 환자이고 자신의 목숨까지 끊으려던 사람에게 다른 사람 안 살렸다고 형사 책임을 논하는 것이 맞냐"며 "검찰에서 기소유예를 고려할 정도로 박씨의 책임은 매우 약하다"고 설명했다.
앞서 검찰은 형법 자살방조죄의 법정 최하한인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구형했다.
박씨는 이날 법정에서 내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박씨는 "제일 먼저 심씨에게 미안하고 그 가족들과 제 주변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것 같아 너무 후회스럽습니다. 제가 말렸어야 하는데 말리지 못한 부분에 있어서 너무 죄책감이 듭니다"며 "용서와 기회를 주신다면 다시 한번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잘못했습니다"고 울먹였다.
박씨는 국비지원제도로 간호조무사 과정을 이수하고 자격증을 따 병원에 취업하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