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달이 걸린 관내 초도 순시
춘천세무서(당시 고병채 서장)를 시작으로 강원도 관내 세무서부터 순시를 했다.
세무서 각 과장, 계장이 함께 한 가운데 서장의 업무현황보고를 청취하고 관내 세원관리상황을 파악했다. 업무보고가 끝나면 세무서 청사 현관 앞에서 관리자 일동과 기념촬영을 하고 시내 식당에서 오찬을 함께 하며 환담을 나누고 오찬 후에는 그 지역 납세자를 대표해 상공회의소 임원들과 차 한잔을 나누는 순서로 순시를 했다.
강원도 지역은 원거리라서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는데 특히 영동지방 속초, 강릉, 삼척, 영월, 태백세무서 순시는 힘들었지만 가며 오는 차안에서 차창으로 비치는 색다른 산천과 바다를 보며 앞으로 할 일을 구상하는 사색에 빠지기도 하였다.
이런 식으로 틈나는 대로 경인지방 세무서까지 순시를 다 마치니 어느덧 2002년의 새 봄이 다 지나가고 있었다.
지방청과 세무서의 ‘행정백서’를 발간하다
2002년 새해가 되자 나는 무엇보다 먼저 지방청과 관내 세무서의 지난해 세정 운영의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도록 하였다.
이 일은 내가 98년 광주청장 시절에 이미 추진하여 잘 마무리를 했던 일이어서, 광주청의 모델을 그대로 이용하면 큰 힘 안들이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김기주 총무과장에게 지시해 광주청과 산하 세무서의 1998년 행정백서를 구하게 하여 그 형식과 목차에 따라 중부청과 산하 각 세무서의 업무추진 내용을 채워 넣도록 했다.
이렇게 지방청은 지방청대로 각 세무서는 세무서대로 행정백서 발간작업이 진행됐다.
2002년3월3일 제36회 납세자의 날 기념으로 지방청과 산하 22개 모든 세무서의 행정백서가 발간됐다.
이를 계기로 1930년대에 출범했던 세무서들의 초창기 역사기록이나 자료가 일실되기 직전에 다시 빛 가운데로 나와 이번 백서에 게재되는 사례가 삼척세무서(당시 김재길 서장) 등 여기저기에서 보고되었다.
이 일은 2003년에도 이어져 그해 3월3일자로 두번째의 행정백서가 발간되었다.
나는 그때 발간한 500쪽이 넘는 중부청의 2001년도와 2002년도 국세행정백서를 보관하고 있는데 지금 다시 꺼내 보니 참으로 소중한 기록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국세청 본청은 본청대로, 각 지방청은 지방청대로, 각 세무서는 세무서대로 매년 동일 날짜에 가급적이면 3월3일 납세자의 날에 맞춰 전년도의 세정 운영상황을 행정백서로 발간해 역사기록으로 남기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 일은 당장은 남이 알아주는 빛나는 일이 아닐지 모르지만, 우리 후대 국세청의 영원한 발전을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 되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인사원칙에 따른 공정한 보직인사
2002년 봄에 국세청은 큰 폭의 인사를 단행했다.
세무서장 인사는 관례대로 본청에서 주관했으나 사무관(세무서 과장급) 이하의 인사는 각 지방청 주관으로 이뤄졌다.
중부청은 수원 중심, 인천 중심 그리고 강원도 영서지방, 영동지방으로 나눠 인사 배치를 고려해야만 했다.
무엇보다 집에서 출퇴근 가능 여부를 감안하되, 납세지원과 → 징세과 → 세원관리과(개인) → 세원관리과(법인) 또는 조사과 순으로 순환보직경로를 고수하는 인사원칙을 마련하고 이에 따라 배치하도록 했다.
나는 김기주 총무과장과 이종기 인사계장에게 이 일을 일임했다. 회의실 큰 테이블 위에 펴 놓은 관서별 직위표에다 인사 대상자 모두를 배치하도록 한 후 총무과장으로 하여금 인사소표 한장 한장을 넘겨가며 보직 배치의 경위를 설명하도록 했다.
미리 정해놓은 원칙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배치하다 보니 많은 시간을 절약한 가운데 공정한 인사를 할 수 있었다.
김기주 총무과장은 나중에 광주청장을 지냈는데 그 후 나를 만날 때면 두고두고 이때의 일을 좋은 경험으로 이야기하곤 했다.
율곡의 10만 양병론과 같은 이회장의 Soft Ware 입국론
중부청장시절 나는 함께 일하는 지방청 직원들에게 세상을 넓게 보는 안목을 틔워주고 싶었다. 그래서 매월 3주째 토요일 아침 한시간을 할애해 정신교양 교육을 실시하였다.
수원중앙침례교회 김장환 목사, 삼성전자 황창규 사장, 휴맥스 변대규 대표, 영안모자 백성 학회장, 삼보컴퓨터 이용태 회장, 코메디안 이홍렬 등이 강사로 초청됐는데 그 중에서 2002년3월23일 우리나라 IT산업의 선구자 이용태 회장의 ‘우리는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특강이 특별히 나의 주목을 끌었다.
그는 바야흐로 제조업 시대는 거하고 ICT시대가 도래했으므로 시대의 변화를 직시하고 우리나라를 세계 제일의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만들기 위해 연 20만 명의 ICT인력을 공급하는 교육체계를 만들고 정부는 이에 필요한 재원을 지원하면 연간 30만명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창의적인 제안을 제시했다.
대학과정의 각 과마다 ICT를 복수전공으로 선택케 하고 기업마다 ICT인턴제도를 도입하도록 지원을 장려하는 유인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나는 그 당시 이 제안이 받아들여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지금이라도 정책당국이 현대판 ‘율곡의 10만 양병론’과도 같은 이 탁견에 귀 기울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납세자의 날, 모법납세자 초청 잔치를 베풀다
2002년3월3일은 제36회 납세자의 날이었다.
이 날이 일요일이어서 나는 3월7일로 날짜를 정해 ‘납세자의 날 기념 모범납세자 초청 만찬’행사를 가졌다.
나는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행사를 지양하고 진정으로 납세의 고마움에 대해 감사의 마음으로 답하는 실질적이고 따뜻한 행사가 되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초청 납세자들은 원탁테이블에 직원들과 섞여 둘러앉아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청장이 돌아다니며 훈장과 상장을 전했고, 초청 납세자 한분 한분을 소개하고 박수로 감사를 표하였다.
청장의 간략한 인사말 후에 만찬을 들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환한 얼굴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나는 매년 납세자의 날이면 수상납세자들을 나무장대처럼 세워놓고 딱딱하게 대하는 행사모습을 탈피해 따뜻하고 포근한 잔칫집 분위기를 만들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납세자가 나라의 주인일진대 주인을 주인으로 섬기는 모습이야말로 우리가 실천해야 할 첫번째 덕목이 아닐까 싶다.
<계속>-매주 月·木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