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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2. (일)

내국세

[연재]'역지사지 마음가짐, 현장괴리 세법 개정 보람'

-격동기 국세청 30년, 담담히 꺼내본 일기장-(58)

 부동산양도신고제 폐지로 세무대리업무를 정상화

 


2000년 여름 개인납세국장으로 있으면서 재산제세업무와 관련해 추진했던 여러가지 제도 개선사항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특별히 두가지 일이 기억에 남는다.

 

2000년 여름 한국세무사회는 부동산 양도신고제도의 폐지를 공식적으로 건의해 왔다.

 

이 제도는 97년부터 부동산을 양도한 자가 등기 전에 부동산 양도 내용을 관할세무서에 신고하고 세무서장이 발행한 신고확인서를 등기신청시에 첨부하도록 한 것이다.

 

 

 

이 때 세무서장은 납부할 세금을 계산하여 납부서를 교부하도록 했고, 이 신고를 하면 예정신고나 확정신고를 한 것으로 했으며 세액공제도 납부할 세액의 15%나 됐다.

 

종전에는 등기신청서 부본을 등기소로부터 수집해 이를 전산처리한 후 납세자에게 세액납부 안내를 했는데, 이에 소요되는 시일이 1년6개월 이상 걸렸다.

 

이에 따라 예정신고 기한내 신고납부 안내가 어려웠고 납세자가 양도대금을 다른 용도에 사용한 후에 세금납부 안내가 이뤄지게 돼 체납액이 증가하는 등 세정상의 문제점이 있었고, 납세자의 입장에서는 수년이 지난 후 소명자료 제출을 요구 받는 경우 입증이 어려웠고, 세금확정이 늦어진데 따른 심리적 부담도 있었다.

 

부동산양도신고제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가능하면 조기에 부동산양도자료를 일선 세무서가 확보해 조기에 세금납부 안내를 하려는 취지에서 95년 소득세법 개정(제165조 신설)사항으로 도입해 97년1월1일 이후 양도분부터 적용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 4년간 이 제도를 운영해 오다 보니 몇가지 문제가 있었다. 무엇보다 등기하는 일이 번거로워졌다.

 

부동산등기는 취득자가 해야 하는데, 부동산양도신고는 양도자가 신고해 세무서장으로부터 발급받은 양도신고확인서를 취득자에게 등기기일내에 넘겨줘야 했다. 양도자는 이 일이 번거롭다 보니 취득 등기업무를 취급하는 법무사에게 이 일을 위임하게 됐는데 이때 양도자는 상당히 부담되는 수수료를 지급해야만 했다.

 

또한 이 업무는 통상 세금신고에 관한 일인데, 세무대리인이 아닌 법무사가 부동산 양도신고업무를 대행하는 등 문제점도 나타났다.

 

한편 법원행정처에서는 그동안 부동산 등기자료 전산화 작업을 추진해 1~2년내에 마무리되는 단계에 와 있었다.

 

이렇게 되면 국세청의 등기자료수집과 입력업무가 불필요하게 되고 법원으로부터 곧바로 등기자료를 전산으로 통보받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우리는 이상과 같은 양도신고제의 문제점과 세정여건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이제는 더이상 양도신고제를 유지하지 않더라도 적기에 자료를 확보해 적기에 신고납부안내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청·차장을 어렵게 설득해 국세청 내부의 의견의 일치를 이끌어 내고 재경부 세제실과 수차례 의견조율을 했다. 재산소비세국(당시 한정기 국장)에서도 결국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였다.

 

세제실은 2001년에 관련 세법을 개정하여 마침내 부동산양도신고제를 폐지하고 2002년 7월부터는 정상적인 예정신고, 확정신고 체제로 돌아갔다. 이리하여 부동산 양도에 따른 세금신고업무가 세무대리인의 본래의 업무로 제자리를 되찾게 된 것이다.

 

 

 

사유문화재에 대한 상속세 과세 민원을 해결하다

 

 

 

서울시에서는 94년 종로구 채부동 158번지에 위치한 홍종문(대한테니스협회 회장 역임)의 가옥을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29호로 지정했다. 홍 회장은 62년에 이 집을 매입해 거주하다가 94년에 지방문화재 자료로 지정된지 5년여만에 돌아가셨다.

 

이 집은 개인주택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상속세 과세문제가 제기됐다.

 

당시 상속세 법령에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상속재산은 비과세하도록 돼 있었으나, 건물의 경우 비과세 범위는 당해 건물과 그 건물이 정착돼 있는 부지만으로 한정해 놓고 있었다.

 

채부동 홍종문가는 대지 773평의 넓은 정원에 자리잡은 한옥 안채․정자․광․현대식 양옥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그 가운데 원형이 잘 보존되고 한국 고유의 건축미를 간직하고 있는 안채와 광․한옥 2동이 서울시 민속자료(지방문화재 자료)로 지정됐는데 이들 건물의 정착면적 70여평을 제외한 나머지 700여평에 대해서는 상속인들이 상속세를 내야 할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잘 꾸며진 넓은 정원을 따로 떼어 팔아야 세금을 낼 수밖에 없게 됐는데 이렇게 되면 그 집의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없어져 버리고 마는데 나는 이 불합리한 문제를 풀 길은 없을까 고심했다.

 

우리는 재경부에 이 문제를 제기하고 합리적인 해법을 모색하기로 했다.

 

우선 우리는 사유재산으로 돼 있는 전국의 유형문화재의 실태를 조사하고 전체 부지 면적과 문화재인 건물정착 면적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양자의 면적 점유비는 각양각색이었다. 과연 건물 정착면적의 어느 배수만큼을 비과세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당시 소득세법에는 1세대1주택을 양도할 경우, 농어촌 주택은 건물정착 면적의 7배 이내의 부속 토지는 양도소득세를 비과세하도록 돼 있었는데 이 규정을 준용하자니 이 범위내에 드는 경우도 있었으나 이 범위를 훨씬 초과하는 경우도 많았다.

 

우리는 여러가지 대안을 놓고 재경부와 협의를 거듭한 끝에 결국 그 문화재가 소재하는 ‘울타리 안의 모든 토지’를 비과세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곧장 상속증여세법 시행령 제8조 ②항을 개정해 ‘문화재 또는 문화재 자료가 속하여 있는 보호구역 안의 토지’를 비과세하도록 하고 이 규정은 납세자에게 유리한 것으로 소급적용을 허용했다. 나는 이런 납세민원이야말로 납세자 스스로의 힘으로는 풀 수 없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는데 다행히 좋은 결과를 얻게 되었다. 

 

 

 

나의 EBS특강 ‘공평과세로 가는 길’

 

 

 

2000년 이후 정부 안팎에서 세정개혁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되자 학계와 매스컴 등에서 여러 형태로 이를 조명했다.

 

2000년에는 한국행정학회와 OECD반부패 서울포럼이, 2001년에는 한국공공경제학회가 세정개혁을 주제로 학술대회 또는 정책토론회를 가졌다. 매스컴에서는 다양하게 특집 방송을 내거나 특별 인터뷰 기사를 내 보냈다.

 

특별히 EBS(교육방송)에서는 2001년2월4일 일요일 오후 한시부터 한시간 동안 ‘공평과세로 가는 길’이라는 주제로 나에게 특강의 기회를 제공했다. 당시 이 시간대 EBS특강은 그 분야에서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석학들이 출연했기 때문에 내가 과연 그 자리에 설 수 있는가 생각해 보니 스스로 두렵고 떨렸다.

 

청장과 주변의 참모들이 국세청을 홍보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하면서 나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었다.

 

나는 범사회적 과세자료 인프라의 구축을 주된 내용으로 한 시간 동안 열강을 했다. 이날 EBS특강은 어려운 세금문제가 주제였으나 전국적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무엇보다 국세청 사람이 T.V공개특강에 출연해 당당하게 세정개혁프로그램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는 것이 기뻤다.

 

 

 

<계속>-매주 月·木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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