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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2. (일)

내국세

(89)'관료가 바뀌어야 나라가 바로선다'

허명환 著(前행정자치부 서기관)

-나이 세기-
국제 행사인 생일잔치

 

한국사람 나이는 설을 쇠면서 한 살씩 더 먹는다. 그 설이 양력이냐 음력이냐에 따라 한두 달 차이야 있지만 설이 기준인 것은 확고하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기준에 확고한 만큼 미국 사람들은 생일이 되어야 비로소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이 확고하다.

 

우리 집 큰애하고 둘째 애는 생일이 각각 4월과 12월로 터울이20개월이다 설을 기준으로 하는 한국 나이로는 한 살 차이라 한국에서는 학교가 한 학년 차이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생일을 기준으로 하고 학기가 9월부터 시작하는 관계로 큰 녀석은 생일이 지났고 둘째 녀석은 생일이 아직 지나지 않게 되다 보니 2살 차이가 되고, 따라서 학년도 2학년 차이가 났다.

 

그런 연유로 미국에서 생일의 의미는 우리보다 훨씬 진하고 진짜 의미가 있다. 우리야 설 쇨 때 떡국 먹음으로써 나이는 이미 먹었고, 생일은 그저 내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기념하는 의미이지만, 미국에서는 생일날 내가 태어났다는 것 외에 비로소 한살을 더 먹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 애들 노는 꼴을 보아하니, 생일이면 꼭 친한 친구들을 이리저리 초대하여 파티를 여는데, 생일 전부터 준비하며 당일 날 행사 그리고 이를 준비하는데 애를 쓴 엄마들 뒤풀이까지 진짜행사였었다.

 

애미, 애비 생일은 미국이란 이국땅에 왔다는 이유로 온데간데없이 그저 귀한 미역 구해 국 한 그릇 끓여 먹는 것으로 때우는데 애들 생일은 거창한 연중행사가 되는 것이다.

 

미국 가서 처음에는 아무래도 애들 영어실력이 딸리니 외국친구들은 초대할 수 없고, 따라서 한국 쪼무래기들 동네 잔칫날이 된다.

 

애들끼리는 누구누구 생일은 언제라는 걸 대충 꿰고 있고, 애들 친소관계나 어른들 친소관계에 따라 초대받는 애들 범위가 결정되는 등 자뭇 정치적인 꼴을 띠는 게 우습기도 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온갖 외국인들끼리 같은 아파트 단지내에서 어울려 살고 있기에, 그중 얼마 안되는 한국사람 움직임은 빠삭하니 꿰뚫어진다. 은밀한 생일잔치란 애시 당초 있을 수가 없는 게다.

 

하여, 애들 생일잔치를 둘러싼 어른들의 정치적(?) 관계가 드러나고 또 새로이 형성되는 꼴을 보노라니, 가뜩이나 영어로 골치 아픈 공부를 하는 판에 이 무슨 우수리 피곤인가 싶은 게 스트레스 감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애들도 외국 친구들을 사귀게 되고 따라서 생일잔치도 국제행사로 되어 갔다. 그렇게 되니 한국인이라 하더라도 영어가 되지 않으면 국제적 생일잔치에 끼어들어 보았자 재미도 없으니 자연스레 선별되어 초기의 그런 피곤함을 덜어 준다. 별스런 방법으로 효도하는 셈이다.

 

하여튼 미국에서는 술을 살 수 있는 나이나 자동차 운전 면허증!' 취득할 수 있는 나이 등 나이와 관련한 모든 기준은 생일로 정해진다.

 

따라서 미국 사람한테 1월 1일 새해에 나이 한 살 더 먹는다하면, 그 사람들은 새해와는 무관하게 당신 생일이 1월 1일인 줄로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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