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청구인 통합진보당을 해산한다"
19일 오전 10시36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1층 대심판정.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진보당에 대한 해산 결정 주문을 낭독하자 이정희 진보당 대표는 온 몸에 힘이 풀린 듯 무너졌다. 재판 내내 꼿꼿하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그는 재판이 시작되기 10분 전인 이날 오전 9시50분께 대심판정에 출석했다. 대심판정은 이미 재판 시작 한 시간 전부터 모인 100여명의 방청객과 40여명의 내외신 취재진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가 대심판정에 모습을 드러내자 방청석에 앉아 있던 일부 지지자들은 그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이 대표 역시 미소를 보이며 그들과 천천히 악수를 나눴다. 이 대표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권영국 변호사와도 손을 꼭 붙잡기도 했다.
오전 10시1분. 박 소장 등 9명의 헌법재판관이 차례로 재판관 출입문을 통해 대심판정에 들어왔다. 이 대표는 양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일어섰다. 그의 얼굴에 피어 있던 옅은 미소는 어느새 사라진 뒤였다. 이 대표와 함께 피청구인석에 나란히 앉아 있었던 김선수 변호사 역시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는 듯 했다.
긴장감이 감돌던 대심판정의 정적이 깨진 것은 오전 10시5분. 박 소장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숙였다가 곧바로 결정문을 읽기 시작했다. 박 소장은 30여분 동안 해산 심판 결정에 이르게 된 이유를 또렷한 목소리로 망설임 없이 읽어 내려갔다. 박 소장이 결정문을 읽는 내내 이정미 주심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다른 재판관들은 비교적 차분한 표정으로 방청객을 바라봤다.
이 대표는 작은 미동도 없이 굳게 입을 다문 채 오로지 정면을 응시했다. 이 대표의 맞은편에는 정부 측 대표로 정점식 검사장 등 법무부 위헌정당 태스크포스(TF) 검사 5명이 청구인석에 앉아 있었다. 정 검사장은 이 대표의 시선이 불편한 듯 맞은편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았다. 이 대표는 박 소장이 결정문을 읽어 내려갈수록 이를 더 꽉 무는 듯 했다.
오전 10시36분. 박 소장은 진보당 해산이라는 최종 결론을 낭독했다. 이 대표는 감정을 억누르고 냉정함을 찾으려는 듯 침착했고, 법무부 측 정 검사장은 순간 살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진보당측 대표석과 방청석에 앉아있던 일부 당원들은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죽었다", "8대1이 뭐야, 미쳤다 미쳤어"라고 소리를 질렀다. 권 변호사는 "오늘로서 헌법이 민주주의를 파괴했다. 대한민국이 민주주의를 살해한 날"이라고 외쳤다. 이 대표는 방호원의 손에 이끌려 쫓겨나는 이들을 가만히 지켜봤다.
이 대표는 같은당 김재연, 오병윤, 이상규 의원 등과 함께 방청객에 남아있던 당원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어요"라는 위로가 오고갔다. 방청객 중 일부 당원들은 자리를 뜨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이 대표는 대심판정에서 나온 직후 "진보당을 독재정권에 빼앗겼습니다. 오늘 저는 패배했습니다"라며 울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