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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국세

[연재]격동기 국세청 30년, 담담히 꺼내본 일기장(28)

아젠다 목록 작성…부가세행정 개선 첫발

헌재 결정으로 토초세 폐지 되다
 

 

92년 10월은 91년 9월에 토초세 예정과세를 시행한지 1년이 되는 시점이었다. 이 시점에서 토초세를 비롯한 토지공개념입법 3개 제도의 시행 효과에 대해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만 했다.
89년 한해동안 평균 32%나 뛰었던 전국의 땅값이 91년에는 12.8% 상승에 그쳤고 92년에는 사실상 처음으로 하락세를 나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초세는 미실현이익에 대한 과도한 과세제도라는 주장이 계속 제기됐고 93년 정기과세 때는 전국적으로 더욱 거센 조세저항에 부딪치면서 급기야 토초세법의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됐고 헌법재판소는 95년 ‘헌법불합치’ 결정을 함에 따라 토초세는 95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8. 본청 부가가치세 과장 시절

 

 

 

 93년2월25일 김영삼(金泳三) 대통령 당선자가 제14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당시 우리 사회는 30여년의 사실상 군부통치시대를 마감하고 비로소 진정한 문민정부시대가 도래하였다고 하여 각 분야마다 개혁과 쇄신에 대한 기대가 한껏 고조되고 있었다.
추경석 청장은 김 대통령의 새 정부에서 국세청장으로 다시 재임명되는 첫 케이스가 되기도 했다.

93년 새해 들어 나는 토초세 정기과세를 차질없이 집행하기 위해 딴 생각을 가질 틈도 없이 미리 계획해 놓은 업무일정에 따라 연초부터 열심을 내고 있었는데 뜻하지 않게 그해 4월16일 본청 간세국 부가가치세 과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부가가치세 과장이라는 자리는 본청의 수많은 과장자리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보직이라고 생각했다. 기업의 총 매출액과 총 매입액의 대부분이 부가가치세법상 세금계산서를 수수하는 거래에 의하여 확정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부가가치세 행정은 직접세와 간접세 행정 그 자체라고 할 만큼 중차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부가가치세 과장으로 부임하자마자 그동안 일선 세무서장 시절, 그리고 서울청 부가가치세과장 시절 몸소 부딪치며 개선하거나 개혁해야겠다고 생각한 일들을 상기하고 내가 본청 과장으로 있는 동안 해야 할 일들의 아젠다 목록을 작성한 다음 업무를 분장해 맡고 있는 4명의 사무관들에게 이를 설명하고 추진방안과 추진기한을 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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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 영수증 주고받기운동은 사회 각층으로 확산되다 주춤하고 또 다시 활성화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영수증 주고받기는 국세청의 주요 세정 이슈이기도 했는데, 영수증 받는 것을 국세공무원 스스로가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다는 취지에서 전국 세무관서에는 현관 입구에 영수증 수집함이 설치되었다. 한 세무서에 설치된 영수증 수집함…바로 옆에 설문서 투입함이 함께 비치돼 있는 것이 이채롭다. <세정신문DB>

 



 금전등록기영수증운동을 폐하고 신용카드영수증으로

 

 

 

 나는 먼저 갈팡질팡하고 있는 영수증 주고받기 정책부터 재검토했다.

내가 서울청 부가가치세 과장 시절 금전등록기(C/R) 영수증 수수 행정은 세정과 연관이 없으므로 이를 유보하자는 건의를 하였고 본청은 이를 받아들여 이를 일시 유보하였다. 그러나 유력 일간신문 등 매스컴에서 국세청은 왜 영수증 주고받기 운동을 중지하느냐는 항의성 기고문이 보도되자 국무총리실 등 외부기관의 압력(?)으로 국세청에서는 다시 새 지침을 내려 일선 세무서로 하여금 금전등록기 설치권장과 영수증 수집 실적보고를 하도록 지시하고 있었다.

금전등록기 영수증 수수운동은 부가가치세법 시행 초기부터 이때까지 15년 이상을 부가가치세 법령에 근거를 두고 그동안 해당 사업자에게 설치하도록 권장하거나 명령하고 영수증을 모아 제출한자에게는 보상금까지도 지급해 왔다.
 
그러나 금전등록기는 현금수입업소를 경영하는 사업자가 종업원에게 이 기계에 의하여 수입금액을 빠짐없이 기록, 관리하게 하는 매장관리 수단으로 사용하는 유용한 도구가 될 뿐이고 이것이 곧 정직한 세금신고를 담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금전등록기가 찍은 대로 신고하지 않아도 체크하기가 어렵고, 세금신고용으로 테이프를 바꿔 찍어내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기업 임원들은 가짜로 찍은 금전등록기 영수증을 회사에 제출하여 접대비 증빙으로 삼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한마디로 이 영수증은 세무행정과 연결할 수단이 없었다.

나는 보고서를 만들어 국무총리실(당시 이회창총리) 표세진 제1행정조정관, 대통령비서실 김무성 민정2비서관(현 새누리당 대표)과 김관용 과장(현 경북지사), 김봉익 과장과 경제비서실을 수차례 방문해 설명하고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나는 다시 재무부 세제실 엄락용과장(후에 산업은행 총재역임)과 최경수 과장(후에 중부지방청장 역임)에게도 설명하고 93년 세법 개정안에서 금전등록기 보급과 관련된 규정을 모두 삭제하기로 협의했다.

우리는 93년7월24일 드디어 금전등록기 설치 사용은 어디까지나 사업자 자율에 맡기고 국세청이 지정하여 설치하거나 주기적으로 지도 단속하는 행정은 중단하도록 전국에 지시했다.

77년 부가가치세 시행 이래 15년간이나 세정과 아무 관계도 없는 금전등록기 영수증 운동을 시행하여 수많은 업소를 단속·처벌하는 등 불필요한 조세마찰과 보상금 지급 등 예산 낭비를 초래하였던 것이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도입한 제도가 얼마나 큰 민원과 비효율 즉 사회적 비용을 촉발하는가를 생각할 때 만시지탄의 감이 있었지만 뒤늦게라도 이 제도를 폐지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국세청이 영수증 수수 행정을 포기할 것인가 그럴 수는 없었다. 정직한 세금신고로 연결되는 신용카드매출전표(C/C영수증) 수수를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크게 전환하기로 했다.

 우리는 바로 C/C영수증이야말로 당신이 낸 세금을 지켜 준다는 문안으로 홍보대책을 세움과 동시에 기업 접대비 증빙으로서 신용카드 영수증 인정비율을 당시 40% 수준에서 대폭 상향 조정하도록 하는 등 관련세법 조항의 개정을 건의하였다.

이리하여 이 때를 계기로 정부의 영수증 행정은 C/C영수증 수수의 길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고, 아직은 미흡했지만 이를 통해 현금수입업소의 수입금액 양성화를 기대하였다.
<계속>-매주 月·木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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