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은 외줄기-
역시 줄은 잘 서야 돼!
내가 다닌 대학에는 도서관이 5군데 있는데 그중 중앙도서관에 가면 보통 3명의 직원이 대출을 담당한다.
모든 책에는 바코드가 있고 학생증에도 바코드가 있어 이 직원들이 주로 하는 일이란 스캐너를 학생증에 한번, 그리고 대출받고자 하는 책에 한 번씩 비추고, 책에다 대출만기일 고무인 찍어주는 것이 고작이다.
그래도 학생들이 많아져 밀리다 보면 줄을 서게 되는데…… 난데없이 새치기(cut-in)하는 학생들이 나타나곤 한다. 한국학생들도 자주 그러는데 이유는 미국식 줄서기를 몰라서이다. 미국에서는 줄을 섰다 하면 원칙적으로 한 줄이다 한 줄로 쭉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다 최종 순간에 가서 실제 자기 일을 보아주는 직원에게로 가게 되는 것이다.
전화 거는 것도 마찬가지다. 빈 전화가 3대 있어도 줄을 전화기마다 서서 3줄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한 줄로 서 있다 자기 차례가 되면 3대 전화기 중 한 대 앞으로 가는 것이다.
아무리 일찍부터 기다려도 재수 없이 전화기에 오래 매달리는 사람이 앞에라도 있다면 줄을 바꾸기도 그렇고, 그냥 서 있자니 뭔가 답답해지고 “역시 줄은 잘 서야 돼!”하면서 끌끌거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식 줄서기가 이러함을 모르는 한국 학생들은 그 약빠른 성격으로 놀고 있는(?) 직원이 보이면 냉큼 그 앞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다.
귀국해서 세종로 청사 농협에 가서 이런 식으로 기다렸더니 창구 여직원의 자상한 보살펌의 대상밖에 안되었다.
내가 한 줄 선답시고 약간 떨어져 서 있으면 뒤에 온 사람들은 날름날름 그 사이를 비집고는 나를 못 본채 자기 통장을 창구 위에 밀어 놓는 것이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도 마찬가지로 오른쪽은 서서 가는 줄, 왼쪽은 걸어가는 줄로 사용한다. 급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이다.
우리는 발판에 아무런 표시가 없어 한가할 때도 삐뚤빼뚤 서서 올라간다. 그러다 보니 나는 그때그때 앞에서 사람들이 서있는 쪽으로 따라 서게 되지만,
때때로는 사람들이 내 뒤에서 반대쪽에서 서는 경우도 왕왕있어 가능하다면 급한 사람이 갈 수 있도록 나름대로 공간을 내주려고 움직이게 된다.
어찌 그리도 급한지 여닫이문은 자기가 통과할 때가 중요하지 뒤에 누가 오는지는 보지도 않고 휑하니 가버린다. 한번쯤 뒤돌아보고 따라 오는 사람이 혹 피해는 입지 않을지 확인해 줘도 좋을텐데 말이다.
미국 가면 반드시 눈치 잘보고 한 줄을 찾아 조용히 뒤에 따라 붙어 설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