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물 터지듯 쏟아진 토초세 조세저항
토초세 과세 민원은 크게 정리하면 두가지였다.
하나는 지가평가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었는데 지가 민원은 지가 결정기관으로 떠넘길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하나는 과세대상 토지냐 아니냐 즉, 법상 유휴토지에 해당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로 이는 국세청이 해결해야 할 민원이었다.
우린 내년 정기과세 시에 한꺼번에 쏟아질 민원 내지 조세저항에 대비해 당시 법령 중에서 조세저항의 소지가 있는 사항을 하나하나 발췌해 면밀히 검토하고 법령 개정 건의안을 준비하였다.
예를 들면 도시계획구역 안에 있는 농지는 과세대상이었지만 사실상 도시계획구역 안에 들어와 있는 농지는 전국적으로 부지기수에 달했다. 그대로 과세할 경우 집단 물의가 일어날 것은 뻔한 일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대안으로 도시계획구역 안에 있는 농지라도 자경하는 경우에는 자경기간에 관계없이 과세대상에서 제외하자고 한 것이었다.
이와 비슷한 민원 야기가 예상되는 사례들을 모아 재무부 관계 국·과장과 미리미리 협의를 진행했다.
그러나 우리의 건의 내용은 그해 법령 개정에 별로 반영되지 못한 채 93년 4월 필자가 부가가치세 과장으로 자리를 옮겨 감에 따라 이 과제는 후임 과장에게로 넘어갔다.
93년 3월 직전 3년간의 정상지가 상승률이 고시됐고 드디어 7월 과세통지가 나가자 토초세 저항이 봇물 터지듯 사방에서 일어났다.
연일 당정 협의가 잇달았고 세제실도 당황한 가운데 있었다. 정부로서는 성난 민심의 불길을 우선 어떻게 진정시키느냐 하는 것이 최우선 과세가 됐다.
국세청은 7월30일 그전해부터 이를 예상하고 미리 검토해 두었던 법령 개정안 140여 건을 건의하였고, 그 대부분이 수용됨으로써 거센 조세저항은 일단 가라앉기 시작했다.
정기과세전에 말썽의 소지가 있는 조항에 대하여는 미리 법령 개정을 했더라면 93년 치뤘던 과세홍역은 피해갈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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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92년 7월 한중세무공무원 교환방문차 대만 국세청을 방문했다. 우리측 필자(단장), 김영일, 김낙회, 김진웅, 송원배와 함께 대만측 대표들의 얼굴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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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세무공무원 교환방문 단장으로 대만 국세청 방문
92년은 93년 토초세 3년 정기과세를 준비하는 해였기 때문에 본격적인 과세를 위한 활동은 없었다.
우리는 여러달 함께 상의하면서 정기 과세추진 대책을 마련했고 공시지가 합동조사업무를 진행하면서 지가가 매우 높아 정기과세때 과세가 확실시되는 극소수의 토지를 골라서 정기과세 예행연습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이 바쁜 중에서도 나는 92년7월4일부터 7월13일까지 한·중 세무공무원 교환방문 계획에 따라 자유중국 국세청을 방문하였다.
행정관리담당관실 김영일 사무관, 재산세2과 김낙회 사무관, 국제조세과 김진웅 조사관, 소득세과 송원배 조사관(통역 겸)이 함께 했고, 나는 국세청을 대표하는 방문단장이 되었다.
우리의 관심사는 대만의 토지세제와 세정 중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무엇인가에 있었다.
특히 토지행정의 일원화와 지가 결정에 중점을 둬 질문도 하고 관련자료도 수집 하였다.
이 행사는 양국 정부기관간의 우호 증진을 도모하기 위한 프로그램이어서 우리는 가는 곳마다 극진한 예우와 대접을 받았다.
항공료를 제외하고 음식, 숙박 등 체제비용은 대만측에서 부담했는데 대만 국세청 간부들도 이 기회를 잔칫날처럼 생각하고 우리와 함께 성찬을 만끽했다.
까오슝지방청을 거쳐 설탕공장, 래프팅계곡, 화롄관광단지 등을 구경하고 다시 타이베이에 돌아와 나는 한국측 대표단장 자격으로 빨간색 초청장을 만들어 자유중국국세청과 타이베이 지방청 청장 등 주요 간부들을 고급 중국식당으로 초대했다.
술은 우리가 준비해간 경주법주를 냈다. 양국 세무공무원들은 밤늦도록 웃음꽃을 피우며 화기애애한 가운데 담소의 시간을 즐겼다.
그해 10월에는 우리측이 대만측 국세공무원방문단을 맞이할 차례였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이로부터 한달 남짓 후인 92년8월24일 노태우 정부는 어제까지 형제지국으로 지냈던 자유중국과의 국교를 단절하고 공산 중국과 전격적인 수교를 공표했다.
이로 인해 배신감의 충격에 빠진 대만 국민들은 연일 반한 시위를 했고 양국을 오가는 항공노선도 폐쇄해 버렸다. 대만 정부에 사전에 한 마디의 귀뜸도 없이 단행된 단교조치를 보면서 우리는 마음속으로 대만 국민들 못지 않게 심한 충격을 받았다.
<계속>-매주 月·木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