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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3. (월)

내국세

(84)'관료가 바뀌어야 나라가 바로선다'

허명환 著(前행정자치부 서기관)

-폭탄주-
과음은 마약 중독과 같다

 

칵테일(cocktail)은 만드는 재료도 다양할 뿐더러 이를 조합하는 방법도 다양하여 수많은 종류가 나온다,

 

진(gin), 보드카(vodka), 럼(rum), 위스키(whiskey), 버번(bourbon), 스카치(Scotch), 테킬라(tequila) 등 독한 증류주(liquor)나 아마레토(amaretto), 베네딕트(benedictine), 슬로진(sloe gin) 등 달고 향기로우면서 독한 리큐르(liqueur) 그리고 여기에다 여러가지 첨가물을 섞어 만들어 마시기에 그러하다.

 

게다가 잔 모양별로, 계절별로 혹은 차거나 더운 종류별로 만들어 마시게 되니 실로 그 종류외 다양함이란 대단하다 아니할 수 없겠다.

 

이렇게 수많은 칵테일 종류 중에 보일러메이커(boilermaker)라는 것이 있는데 이게 바로 우리나라의 폭탄주에 해당한다.

 

1,5온스 분량의 위스키를 위스키 잔에 채운 후 손잡이가 있는 맥주잔에 3/4만큼 맥주를 부은 데에다 이를 풍덩 빠뜨리고서는 곧바로 발칵발칵 마시는 보일러메이커가 바로 미국식 폭탄주인 것이다.

 

처음 미국에 가니 이건 온통 보이는 것은 눈에 익은 양주 뿐인데다, 값도 우리 돈으로 불과 1~2만원이면 사서 마실 수 있으니 눈이 뿅! 한다. 우리나라 술집에서 마시는 양주 값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이해가 될 게다.

 

게다가 맥주도 미국산, 캐나다산, 네덜란드산, 독일산 등 종류별로 입맛대로 다양화되어 있기에 평소 즐기던 폭탄주틀 부담 없이 마실 수 있어 그저 신났었다.

 

같이 유학 간 다른 부처 공무원이나 현지 유학생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벌리기라도 하면 곧잘 밤새워 마시게 되는데, 예의 한국식으로 폭탄주롤 만들어 *좌익척결, 우익보강해대면서 즐거이 돌리곤 했다.

 

그런데 그렇게 어울려서 술을 마시다 보니 그 후로 뭔가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술이 약한 사람이 폭탄주률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치더라도 우선 같이 술 마시자는 사람이 줄어든다.

 

또한, 대부분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 함께 살다보니 집사람을 통해서도 말이 들리기 시작하는 것이 ‘술이 쎄시다면서요!’하면서도 뭔가 아리송한 여운이 도는 말이 들리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살다보면 자연 미국식으로 살게 되기 마련이라 통상 유학생들끼리 서로 어울려 술을 마신다 하더라도 대부분 그저 맥주 한 두 캔을 따서 들고는 자기 것만 홀짝홀짝 마신다.

 

한국식으로 술잔을 부어 주고, 그 잔을 돌리고 하는 것은 미국 간 초창기에 아직 한국풍이 강하게 남아 있을 때나 그렇게 하지만, 그나마 그렇게 할 때도 뭔가 이상하고 어색스러운 느낌이 드는데 참으로 분위기란 묘한 것이다.

 

잔을 돌리지도 않고, 맥주캔도 자기 양껏 하나 가지고 남기든, 세개 네개를 마시든 서로 신경 안 쓰는 것이다. 한국에서 곧바로 온 사람이 처음에 보면 술버릇들이 X판이라 생각하기 쉽고, 실제 그렇게 오해하는 사람도 많다.

 

자, 이런 분위기에 뭐 이상한 사람이 턱하니 와서는 잔을 돌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도 폭탄주를! 그러니 사람들이 슬슬 피하고 아줌마들이 쑥덕쑥덕 거릴 수밖에,

 

이런? 내가 무슨 술 못 마시면 손이 덜덜 떨리는 알코올 중독 환자도 아닌 터에 이 무슨 해괴망측한 노릇인가 싶어 그 이후로는 딱, 폭탄주를 끊었다. 나도 미국식 정상인(?)처럼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이다.

 

시라큐스(Syracuse)에는 퇴근길에 어디 들러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할 만한 데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고, 그저 한 잔 생각나면 얼른 집에 가서 맥주나 꺼내 마시는게 고작이다. 그렇게 한 세월을 보내자 자연스레 나도 미국인의 음주습관에 젖어 들게 되었다.

 

미국인들이 내가 처음에 보일러메이커를 그렇게 마셔 대는 것을 보았다면, 틀림없이 나는 알코올 중독자로 격리 수용되어야 하며, 사회생활 부적응자로 인식하고는 나를 기피 대상자로 취급하였을 것이다.

 

술은 마약처럼 드럭(drug)으로 함께 통칭되는 게 미국이다. 그네들은 술 권하는 사회의 한국인 대부분을 마약 중독자와 같이 볼 게다.

 

우리나라는 유별나게 술을 많이 마시고, 술에 대해 관대하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끼리 이야기일 뿐이다, 특히나 술이 센 점은 세계에서도 알아줄 정도라는 것이 자랑까지 되는지도 의심스럽다. 오죽 자랑할 것이 없으면……하는 생각도 든다.

 

술에는 장사 없듯이 우리식 음주문화가 세계 공용도 아니다. 국제화, 세계화시대에 걸맞는 본의 아니게 마약 중독자와 동일하게 취급되지 않는 그런 음주문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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