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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2. (일)

내국세

[연재]격동기 국세청 30년, 담담히 꺼내본 일기장(24)

마땅히 내야 할 세금…'탈세자와 술래잡기'

세대생략 재산대물림, 과세 첫 사례 
 
영등포 대림동에 ‘OO의 집’이라는 백화점이 있었다.
장사는 그다지 활발하지 않았으나 토지, 건물의 시가액은 수십억대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 재산이 87년과 89년 두차례에 걸쳐 할아버지로부터 두 손자(전직 某 국무총리의 외손자)에게로 증여가 되었는데 증여세는 한푼도 내지 않았다. 증여하기 전 3년간 이 백화점 법인이 이익을 내지 못하여 주식가치가 마이너스가 됐고 이 마이너스 주식을 증여하였으므로 세법상 내야 할 증여세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과연 이것이 법의 정신에 맞는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는 증여시점으로 소급해 해당 부동산에 대한 감정평가를 한 결과 그 가액은 수십억원에 달했다. 나는 감정가액을 기준으로 하여 증여세 추징 여부에 대한 검토에 착수했다.

이 사안에 있어서 문제가 되는 점은 비상장 주식이라는 형식을 빌려 실제는 고가의 부동산을 증여한 것과 할아버지 명의의 재산이 2세대인 아들을 거치지 않고 바로 3세대인 손자에게로 넘어감으로써 한 세대를 뛰어 넘어 재산을 대물림한 것 바로 이 두가지였다. 나는 이 사안에 대한 과세론과 비과세론에 관한 검토 보고서를 작성하여 지방청장(당시 이상혁 청장)과 국장(당시 임복빈 국장)에게 보고해 과세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리고 고지하였다.

얼마후 본청장(당시 서영택 청장)으로부터 과세 경위를 묻는 전화가 와서 그동안의 과세 검토과정을 보고하자 그냥 듣기만 하고 다른 말씀은 없었다. 나중에 알아 보았더니 본청 재산세국 해당과에서는 나의 소급감정에 의한 과세가 법상 무리가 있다고 진언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해당 회사로부터는 당연히 과세불복이 제기되었다. 우리는 두 건의 증여분 중 87년 신고분에 대해서는 세무서장이 이미 주식이동조사를 통하여 신고한 대로 시인하고 결정을 했기 때문에 국세심판례를 근거로 고지결정을 취소하고, 89년 신고분에 대해서는 납세자가 이를 수용하는 것으로 이 사안을 마무리하였다.

이 사안에 관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관련자료를 수집하고 사실관계를 정리하여 법적 검토를 하면서 최종 마무리할 때까지 당시 법인세과 석호 계장의 수고를 잊을 수가 없다. 당시 후임 과장은 의도적으로 이 일의 처리를 회피하기까지 했으나, 석 계장은 소공세무서로 발령이 난 후에도 이 일을 빈틈없이 검토해 마무리하는데 충성을 다했다.

이 사안은 그 후 상속․증여세법에 이 사안에서 문제가 된 두가지 사항을 입법으로 보완하게 한 결과를 가져왔다.
 그 하나는 주식을 대물림한 경우라도 그 회사의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일정비율 이상으로 큰 경우에는 그 부동산을 평가하여 재계산하도록 하였으며, 다른 하나는 세대를 뛰어넘은 재산 대물림에 대해서는 세대생략할증과세 제도를 도입하여 시행토록 한 것이다.

 

90년대 초에도 영등포세무서는 서울시내 세무서 중 세수규모 선두권을 유지했다. 관내에는 오비맥주와 크라운 맥주 등 대형 주류회사와 ‘알짜부자’ 철강 대리점들이 많았다. 특히 서울지법 남부지원·서울지검 남부지청이 영등포 세무서 관내에 소재하고 있어 변호사 사무실이 많았다. 때문에 변호사들과의 납세다툼은 세무서장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 당시 영등포세무서 건물 모습. 왼쪽 출입구가 영등포세무서 정문이고 오른쪽 출입구가 구로세무서 정문. 서장실은 2층에 있었다. <세정신문DB>

 


 영등포세무서 관내에는 당시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현 서울남부지방법원)과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현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이 자리잡고 있는 터라 서울시내에서 변호사 사무실이 가장 많이 밀집돼 있었다.

 

 실종된 ‘노블리스 오블리주’

 

 

 

91년 1월 부가가치세 면세사업자 수입금액 신고를 받아 본 결과 수임건수가 가장 많은 장.S.W 변호사의 신고 금액이 하위권에 있었다. 당시 변호사 수입금액은 법원에서 수임건수 자료를 수집하여 여기에 민·형사 등 소송유형별로 건당 기준 금액을 갖고 개별 변호사의 수입금액을 추정하는 방식으로 관리하였다.

장 변호사의 신고 수준은 이 기준에 의한 추정수입금액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장 변호사는 당시 제1야당 사무총장직에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섣불리 접근하다가는 무슨 오해를 살지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궁리 끝에 이 일을 서장이 직접 담당하는 것으로 하고 의원 비서에게 전화를 하여 내용을 말하였더니 다음날 비서의 답변은 거의 전부가 무료변론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간 연락이 없었다.

본청 박래훈 소득세과장(후에 대구청장 역임)에게서 여러가지 의미의 전화가 왔으나 그도 경위를 들어 보고 소신껏 하라고 말하였다. 나는 장 의원에게 이렇게 계속 협조하지 않으면 국회 출입기자실에 가서 내가 준비한 자료를 그대로 공개할테니 어떻게 하겠느냐고 했다.

 이렇게 여러날 밀고 당기는 협의과정을 거쳐 해당연도 수임건수 중 중복계수분과 무료변론 건수를 제출받아 수입금액 수정신고를 마무리하고 그의 수입금액을 1위로 하여 나머지 관내 변호사의 수입금액 순위를 확정했다.

일반적으로 건당 기준금에 의한 변호사 추정 수입금액은 실제 수입금액에 비하면 아직도 몇 분의1에 지나지 않았다. 입으로는 법과 정의를 말하면서 정직과 정의의 본을 보여야 할 사회 상층부 지도층의 이러한 도덕불감증이 우리 사회의 모든 불평등, 불공정의 새로운 기원이라고 생각됐다.

<계속>-매주 月·木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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