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가장 큰 아픔… 어머니 여의다
그러던 어느 날 부대내 인사계 선임 하사와 함께 서울시내로 외출을 하게 됐다. 그 분의 아들 문제로 필자와 상의를 하자는 것이었다. 부대 내에서 해도 되는데 기어코 서울시내에 나가서 막걸리도 한잔 하면서 진솔하게 이야기해 보고픈 심정이었던 것 같았다.
그 분께서는 평소에도 연령으로 보나 또 사회 경력으로 보나 부대내 다른 병사들 보다는 필자에게 좀더 믿음이 가는지 개인적으로 자주 이야기를 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동대문세무서에 근무할 때 잘 가던 신설동 부근에 있는 허름한 선술집에 가서 저녁 겸 한잔을 하면서 아들의 장래를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때문에 마음고생이 많다고 했다.
그 분도 배운 것도 없고 오랜 세월 군대에만 있었기 때문에 사회 물정을 잘 모른다는 이야기도 함께 들려주었다. 그러나 필자 또한 국세청에서 하급 직원으로 4년간 근무한 것 밖에 없는데….
막내 삼촌 같기도 하고 큰 형님같기도 한 순박하고 단순한 성품을 지닌 그 선임하사와 단둘이 막걸리를 기울이면서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술에 취해 그만 그 자리에서 함께 쓰러져 버렸다.
그날 밤 필자는 꿈자리가 몹시 뒤숭숭해 새벽녁에 깼다.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들어 그 길로 마포 창전동에 있는 아파트 집으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큰 일이 벌어졌다. 그동안 중풍으로 1년여간 고생하시던 어머니가 그만 숨진 것이었다. 정신차릴 겨를도 없고 그저 멍하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어머니의 싸늘한 시신을 만져보고 나서야 “아! 어머니가 우리의 곁을 떠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곁에 있던 식구들의 말에 의하면 어머니께서는 지난밤에 아들이 올 거라며 따뜻한 쌀밥 한 그릇을 아랫목에 묻어놓고 손꼽아 오기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새벽녘까지도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어머니가 그 밥을 잡수시고 그만 조용히 누워 주무시면서 숨을 거두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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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근 이사장은 부모님을 기리기 위해 부모님 성함 중 가운데 글자인 부친의 석(石)과 모친의 성(成)을 합친 석성장학재단을 만들었다. 지난 20년동안 장학사업을 펼쳐 온 사단법인 석성일만사랑회가 충남 논산에 중증장애인을 위한 사랑의쉼터 1호점을 열었다.<2013년12월12일, 중증장애인 사랑의쉼터 1호점 준공식 때 아내(오른쪽)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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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아들만을 생각하시면서 밤이나 낮이나 집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셨던 그 애틋한 어머니…,
군대서 휴가나올 때면 그토록 고기가 먹고 싶다고 애걸하셨던 어머니….
오래 전인 6‧25 전쟁통에 아버지가 일본으로 가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어린 우리 4남매를 당신의 친정집으로 직접 데리고 가셨던 어머니….
먹을 것이 없었던 그 난리통에 막내 아들(49년생)을 영양실조로 잃어 버렸던 어머니….
또 69년 여름에는 심장마비로 숨진 장남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어머니.….
아버지가 술만 드시면 당신을 괴롭히고 욕하고, 때리실 때도 당하고만 계셨던 어머니….
대구 집을 처분한 알토란 같은 귀한 돈을 사기꾼에게 날려버린 남편과 다투다 그 충격으로 중풍병에 걸려 몸져 눕게 된 어머니….
병수발 한번 제대로 해드릴 수 없는 현역병인 아들을 당신의 목숨처럼 귀하게 생각하셨던 어머니….
무엇보다 이 세상에 태어나셔서 학교 문턱에도 못 가 보셨던 일자무식인 불쌍한 나의 어머니….
이렇듯 한평생 서럽고 한스럽게 살아오셨던 그 어머니가 그만 52세의 젊은 나이에 우리의 곁을 떠나셨다니….
무엇보다 그 어머니의 마지막 배웅도 제대로 해드리지 못한 이 불효자식은 지금도 두고두고 후회하고 한스럽게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필자는 한 많은 어머니의 이름 ‘강성이(姜成伊)’의 가운데 자(字)와 십여년후인 84년말에 돌아가신 아버지 ‘조석규(趙石奎)’의 가운데 자(字)를 따서 석성(石成) 장학재단을 만들어서 두분의 애틋한 사연들을 널리 널리 알려드려야겠다고 굳게 맹세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20여년동안 그 석성장학재단을 내 목숨처럼 아끼고 있다.
그때가 필자에게는 생애 중 가장 어렵고 외로웠던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군대에서 보초근무를 하면서 하도 마음이 괴로워 몰래 부대 밖으로 빠져 나가 술을 마시다가 상급자에게 적발된 사건도 있었다. 그 사건으로 필자는 서울 영등포에 있는 6관구 헌병대 영창에서 일주일간 근신(영창생활)하게 된 사건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계속>-매주 水·金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