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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2. (일)

내국세

[연재]'나는 평생 세금쟁이'(12)

가난했던 시절, 주위 도움은 큰 희망

육군 졸병의 세금알바 생활

 

필자는 35개월간 군복무 중 병장 계급장만을 17개월동안 달은 것 같다. 비교적 다른 병사에 비해 병장 생활을 오래 한 것이다.
그 이유는 필자가 잘 나서가 아니라 당시 김신조 무장공비 사건 이후 군 당국에서 사병들의 군복무기간을 무려 5개월 정도 늘렸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어떤 선임병의 경우는 갑자기 특명이 몇달간 보류되어 일정한 보직도 없이 내무반에서 빈둥빈둥 노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외출, 외박 아니면 휴가 명분으로 밖으로 나가는 경우가 자주 있었는데 그때마다 자주 가는 곳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이었다. 고참 병장들은 주말이면 대부분 집이 있는 서울로 향했다. 필자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때 필자는 가정 형편이 몹시 어려웠다. 중풍으로 누워 계시는 어머니와 어머니를 수발하며 어렵게 고등학교에 다니는 막내 여동생, 또 종합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던 바로 밑의 여동생과 일정한 직업이 없었던 아버지와 함께 마포구 창전동에 있는 영세아파트에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다.

돈이 없어 예전에 살던 대구 집을 처분하고 매입한 신수동 단독주택을 또다시 처분해 겨우 신촌 창전동에 허름한 창전시민아파트 지하실에 15여평 정도 되는 아파트 한채를 마련해 어렵게 살고 있었다. 수세식 화장실에 중풍 환자까지 함께 기거했으니…. 아마도 필자의 생애에서 그 때가 가장 어렵게 살아온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인지 외출이나 외박을 나갈 때에는 거의 대부분 집에 와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많이 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어려운 생계문제를 해결해야 했으나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서울 청량리에 있는 ‘밥퍼식당’에서는 조용근 천안함재단 이사장(세무법인 석성 대표세무사)의 얼굴을 자주 볼 수 있다. 밥퍼식당은 최일도 목사가 지난 89년부터 해오고 있는 무료 급식식당이다<조용근 천안함재단 이사장(오른쪽)이 크리스마스 이브인 2011년12월24일,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밥퍼 봉사를 하고 있는 모습>

 


이런 필자의 어려운 입장을 아시는 과거 직장 선배님들께서 자기들이 근무하고 있는 세무서에 나와서 자기들의 업무를 거들어주는 아르바이트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해서 틈날 때마다 그분들의 사소한 업무처리를 도와드리곤 하였다.

참고로 그 당시 국세청 선배님들은 낮에는 현장 확인업무와 밀린 세금을 받는 업무 등 종일토록 외부근무를 하고 또 밤에는 세무서 내에서 장부 정리나 통계표 작성 아니면 민원서류 처리 등 산적한 업무가 너무 많아 정말 눈코 뜰 새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많은 선배님들은 미결업무를 집으로 가져가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그 분들 중에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선배 한분이 계셨다. 필자가 서울로 상경해서 첫 근무지인 동대문세무서에서 함께 근무할 때 알게 된 필자보다 7~8세 많은 분이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선배님께서는 필자의 어려운 가정형편을 잘 아시고 퍽이나 마음 아파하셨다. 그러면서 자기 업무를 좀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하셔서 틈만 나면 통계표 작성이나 영업세 대장 작성 등 비교적 간단한 업무를 도와드렸다.
그랬더니 수고했다면서 그 대가로 약간의 용돈을 주시곤 하셔서 그 돈을 참으로 요긴하게 사용했었다.

휴가 때에는 휴가기간 내내 열심히 그분을 도와드리고 받은 돈으로 어머니의 병원 치료비와 생활비에 보태 쓴 적이 있어 당시 젊은 필자에게는 그것이 얼마나 고마웠던지….
또 3년 동안이나 세무일을 손놓게 되면 복직했을 때 낙오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도 해왔는데 틈틈히 일을 도와 드리면서 세무 행정의 흐름을 잊지 않고 계속 접할 수 있어서 한편으로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그때부터 그 선배님께서는 필자가 제대한 후 용산세무서로 복직할 때까지 줄곧 불러 주셔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해주시고 또 격려를 해주시고 생활비도 지원해 주셔서 참으로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아마도 필자가 지금과 같이 나름대로의 나눔과 섬김의 사역을 기쁘게 하는 것도 그때 그 선배님의 고마움이 가슴에 쌓여 있어서가 아닐까?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시는지 뵙고 싶다. 선배님의 자상하신 그 얼굴을….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큰 절을 하고 “그 어려울 때 도움을 주셔서 지금의 제가 있었습니다” 라고 하면서 그분의 가슴에 안기고 싶은 심정이다.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유일상 선배님!

또 이 지면을 빌어 그 때 그 어려울 때 딸로서 또 여동생으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해 준 미국에 살고 있는 두 여동생들에게 오라비로서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계속>-매주 水·金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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