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번의 큰 실수
논산훈련소로 가면서 필자의 마음에는 만감이 교차했으나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자고 몇번이나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다행히 국세청 근무경력 덕분에 훈련소로부터 행정병과(70) 주특기를 부여 받아 6주간의 전반기 기본교육을 마치고 서울 인근에 있는 부대로 배치될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을 가졌었다.
그러나 당시 군 기강이 매우 살벌해 주어진 주특기에 관계없이 갑자기 공병병과(115)로 바뀌면서 김해공병학교의 8주간 후반기 교육까지 받게 됐다. 다행히 교육성적이 좋아서 경기도 안양시 외곽에 있는 건설공병단으로 배속받게 됐다.
그러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사회생활을 하다가 3년 정도 늦게 입대한 터라 서너살이 어린 선임병들에게 꼬박꼬박 존대를 해야 했고, 고참병들의 잦은 폭언과 깊은 밤 집합해서 기합을 받고 보초까지 서야 하는 등 심신이 몹시 힘들었다.
그런데도 입대하기 전에 사회선배들로부터 군대가 그런 곳이라고 많은 가르침을 받아서 인지는 몰라도 3년간 “죽었다” 생각하고 선임들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복무했다.
무엇보다 20세 때부터 사회생활을 해온 터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부터 후임병이 하나, 둘 들어오고 하니 군대생활도 어느덧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가끔 외출을 나가 서울 마포에 있는 집에 가보면 마음이 아팠다. 아버지께서는 대구에 계실 때는 직조공장 기사 특기가 있어 일자리는 늘 있었으나 서울로 오시고부터는 직장을 구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대구 집을 처분하고 남아 있던 약간의 현금도 청계천에서 기계 브로커를 하는 어떤 사기꾼에게 걸려 그만 몽땅 날려버리고 말았다.
그 충격으로 시간만 나면 술타령이었으며 만만한 어머니를 괴롭히고 어떤 때는 폭행도 하게 됐다. 그런 충격으로 얼마후 어머님이 그만 중풍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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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근 이사장은 재단법인 석성장학회 봉사의 손길을 국내 뿐만 아니라 국외까지 확대했다.<조용근 이사장(사진 중앙)이 2013년1월22일 미얀마 사랑의 학교 5호 건립 기증식에서 리본을 커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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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필자는 하루 빨리 군대를 빠져 나와야겠다는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알아보니 ‘의병(依病)제대’의 길이 있다는 것이었다.
참고로 필자는 고등학교때 물놀이를 하다가 그만 귀를 잘못 건드려 그때부터 중이염을 앓게 됐다. 생각 끝에 필자가 복무하고 있는 부대내 의무대로 가서 ‘중이염’을 앓고 있으니 후송조치를 해 줄 수 없겠냐고 했더니 진료 결과 별 무리 없이 후송조치를 해줬다.
그때 필자는 원에도 없었던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 입원하게 됐다. 필자의 친척이 평소 알고 지내던 병원에 근무하는 담당 군의관을 찾아가 필자가 겪고 있는 중이염과 어려운 가정사정을 이야기해 놓은 것 같았다.
약 3개월간 입원하면서도 병실에서 누워 있을 수는 없고 해서 병원 서무병의 업무도 도와줬다. 그러던 어느날 담당 군의관의 이야기가 중이염으로 의병 제대를 하려면 큰 수술을 받은 후 후송조취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며칠간 곰곰히 생각을 해봤다.
지금껏 1년이상이나 군복무를 했는데 중이염 수술도 받아야 하고, 또 지방병원으로 후송을 해서 거기서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의병제대를 해야 한다니…
차라리 그럴 바에는 고생을 좀더 하더라도 2년간을 더 복무하고 만기로 제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중이염은 수술하지 않고 치료를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아무리 어려운 가정환경이라도 좀더 참고 견뎌보자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또 그동안의 필자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이 한없이 부끄럽기도 했다.
그래서 약 100일 가까이의 통합 병원 생활을 끝내고 다시 안양에 있는 건설공병단으로 원대복귀를 했다.
병원 입원전까지 근무하던 본부 경리과에 가서 계속 근무하려고 하니 이미 필자 대신 다른 후임병이 복무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유격훈련을 전담하는 예하부대 교육담당자로 배속받았다.
결국 그 유격부대에서 2년간을 더 복무하고 만기 제대하게 됐다.
필자는 그때 일을 지금도 생각해본다. 그때 만약 중이염 수술을 받고 의병제대를 했더라면 오늘까지 떳떳이 살아갈 수 있었을까? 다행히 아직까지 큰 수술 한번 없이 비교적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그러나 필자는 아직도 중이염은 앓고 있어 청각에는 약간의 장애가 있지만 그래도 비교적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한다.
<계속>-매주 水·金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