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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5.25.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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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명의 우려먹기'로 수십억 챙긴 일당 검거

서류 형태로만 존재하는 가짜 회사(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노숙인을 근로자로 둔갑시키고, 그 명의로 국가가 지급하는 전세자금 수십억원을 빼돌린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범행을 주도한 김모(33)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명의를 빌려준 노숙인 전모(49)씨 등 20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12일 밝혔다.

김씨 등은 2011년 1월부터 지난 4월까지 모두 207차례에 걸쳐 근로자·서민 전세자금 대출 33억7800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급하는 근로자·서민주택전세자금은 세입자가 은행에 가서 직접 신청해야 한다. 하지만 보조금은 세입자가 아닌 주택 명의자(임대인)에게 지급되고, 갚아야 하는 의무도 명의자에게 있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은 실제로 거주하는 지와 상관없이 명의자와 세입자로 등록만 하면 돈을 타낼 수 있는 허점을 악용해 전세자금을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전세를 끼고 저렴하게 나온 주택을 2000만~3000만원에 산 뒤 노숙인 2명과 짜고 각각 주택 명의자와 세입자로 등록했다. 이후 명의자 앞으로 국고보조금이 나오면 갚지 않고 잠적하는 수법으로 돈을 챙겼다.

근로자·서민주택전세자금을 신청하려면 근로자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김씨 등은 노숙인들이 근로자라는 허위 증빙 자료를 만들기 위해 페이퍼 컴퍼니 18개를 만들고 고용한 것처럼 속였다.

이후 노숙인들을 4대 보험(국민연금·건강보험·산재보험·고용보험)에 가입시켜 근로소득원천징수서 등 대출에 필요한 조건을 맞췄다.

이들은 또 근로자로 등록된 노숙인들의 신용 등급이 올라간 것을 이용해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는 등 41억5900만원을 추가로 챙긴 혐의도 받고 있다.

김씨 등은 노숙인들과 3~6개월간 합숙하며 금융 기관의 대출 심사에 대응하는 법을 가르친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 등은 서울역과 반포고속터미널 일대 노숙인에게 밥과 술을 사며 접근한 뒤 "돈이 필요하지 않느냐"며 범행을 공모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노숙인들은 김씨로부터 200만~1000만원 상당의 돈을 받으며 명의를 빌려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는 노숙인 명의로 고급 승용차를 할부로 사서 되팔고 할부금도 갚지 않아 추가 이득을 챙기기도 했다"며 "노숙인들의 명의를 쓸 수 있는 데까지 쓰고 버린 셈"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노숙인들은 자신의 명의가 불법 행위에 쓰인다는 사실을 알고도 돈을 받는 조건으로 빌려줬다"며 "국가보조금과 금융권 대출금 등을 가로챈 공범"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경찰은 김씨를 지난 4월 말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돈의 사용처를 수사하는 한편 대출 명의를 알선한 노숙인 모집책 등 공범 40여명을 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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