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울산 모비스가 2년 연속 챔피언결정전 정상에 올랐다. 큰 경기에 강한 '명가'의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모비스는 10일 울산동천체육관에서 열린 창원 LG와의 2013~2014 KB국민카드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7전4선승제) 6차전에서 79-76으로 이겼다. 4승2패, 우승컵은 모비스에 돌아갔다.
지난 시즌 서울 SK에 밀려 정규리그 2위에 그친 모비스는 플레이오프에서 7연승(인천 전자랜드전 3-0 승·SK전 4-0 승)을 거두며 단숨에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했다.
올해도 LG에 이어 2위로 플레이오프를 맞은 모비스는 다시 한 번 '최후의 승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이로써 모비스는 전주 KCC와 함께 플레이오프 최다 우승팀(5회) 반열에 오르게 됐다. 또 대전 현대(1997~1998·1998~1999시즌 우승·현 KCC)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챔피언결정전 2연패를 달성했다.
양동근(33)·함지훈(30)·문태영(36)·로드 벤슨(30)·리카르도 라틀리프(25) 등 지난 시즌 우승 주역들이 올해도 막판 뒤집기의 원동력이 됐다.
'30대 베테랑'들이 팀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모비스는 체력적인 한계를 드러내며 LG에 정규리그 역전 우승을 허용했다.
하지만 단기전인 플레이오프에서는 얘기가 달랐다. 4강 플레이오프(5전3선승제)에서 SK를 3승1패로 누르고 챔피언결정전에 오른 모비스는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총력전을 예고했다.
유재학(51) 모비스 감독은 "시즌 마지막 농구 축제에서 체력 문제에 시달리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단기전은 집중력 싸움이다. 패기를 앞세운 LG가 신선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지만 모비스는 풍부한 경험으로 맞서겠다"고 승리를 자신했다.
뚜껑이 열렸고 선수들은 유 감독의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했다.
양동근은 김시래(25·LG)의 이적 공백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팀을 지휘했다. 이미 체력이 바닥난 상황이었지만 챔피언결정전 6경기를 치르는 동안 팀 내에서 가장 긴 경기당 평균 37분56초를 소화하며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했다.
팀이 벼랑 끝에 놓였을 때마다 터뜨린 천금 같은 득점포도 양동근의 가치가 유감없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함지훈은 김종규(23·LG)와의 빅맨 대결에서 한 수 위의 기량을 뽐냈다. 신예 김종규가 덩크슛을 내리꽂으며 기세몰이에 나서는 사이 함지훈은 듬직하게 골밑을 지키며 실속을 챙겼다.
LG가 김종규의 수비 불안을 돕기 위해 외국인 선수를 투입시키면 모시브는 공을 밖으로 빼 외곽슛을 노렸다. 함지훈은 챔피언결정전 전술의 핵이었다
모비스의 주포 문태영은 평균 22.2점을 책임지며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로 우뚝 섰다. 형 문태종(39·LG)과의 '형제 대결'에서도 승리를 거두며 KBL 입성 후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각각 수비와 공격에 강한 벤슨과 라틀리프는 유 감독의 전술에 맞춰 번갈아 코트를 누비며 상대를 무력화시켰다. 특히 벤슨은 LG의 '특급 용병' 데이본 제퍼슨을 상대로 멋진 수비력을 자랑하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들이 있어도 사령관이 지휘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팀은 빛을 발할 수 없다. 이같은 측면에서 모비스의 챔피언결정전 2연패를 이끈 일등공신은 '만수(萬手)' 유 감독이다.
유 감독은 상대를 철저하게 파악한 뒤 손발을 묶는 전략을 주로 사용한다. 한마디로 상대가 잘하는 것을 못하게 막는다.
이번 챔피언결정전에서도 그랬다. 유 감독은 LG의 에이스 제퍼슨보다 오히려 국내 선수 수비에 집중했다. 제퍼슨을 막기 위해 수비력을 한 쪽으로 쏟았다가는 자칫 문태종·김종규 등에게 대량 실점을 허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 감독은 제퍼슨에게 점수를 내주더라도 그 외의 루트에서 나오는 득점은 끝까지 봉쇄하려고 했다.
전술은 들어맞았다. 제퍼슨은 평균 22.7점으로 준수한 활약을 펼쳤지만 나머지 선수들은 이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LG는 고른 득점을 올리지 못했다.
심리전도 탁월했다. 2차전에서 72-78로 패한 뒤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유 감독은 "두 경기를 치르고 나니 이번 챔피언결정전을 4승1패로 끝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3~5차 울산 원정을 앞두고 있던 LG 입장에서는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 있는 도발이었다.
또 하나의 우승반지를 수집한 유 감독은 신선우(58) WKBL 전무이사·전창진(51) 부산 KT 감독을 따돌리며 역대 최다 우승 감독(4회)에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