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부처 업무보고를 끝내자마자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한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대재산가 51명, 역외탈세 혐의자 48명, 대부업자 117명, 인터넷 카페 운영자 8명 등 모두 224명이 타깃이 됐다.
국세청은 4일 "음성적으로 부를 축적·증여한 대재산가 51명, 국부유출 역외탈세혐의자 48명, 불법·폭리 대부업자 117명, 탈세혐의가 많은 인터넷 카페 등 8곳에 대한 세무조사에 일제히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전국 동시 세무조사는 김덕중 국세청장 취임 이후 '지하경제 양성화'라는 새정부 국정과제 실현을 위한 첫 번째 조사이자, 대통령 업무보고가 끝난 이후 세무조사 행정을 본격 집행하겠다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대재산가 51명…부당내부거래 등을 통한 편법 상속·증여 중점 점검
첫 타깃으로 선정된 조사대상자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대재산가 51명이다. 이들은 기업자금을 불법 유출해 차명으로 재산을 관리하거나, 변칙적으로 경영권을 승계한 혐의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탈세혐의가 있는 대재산가에 대한 세무조사는 줄곧 진행돼 온 사안이다. 국세청은 지난해 이후 편법 상속·증여 혐의가 있는 대재산가 등 771명을 조사해 1조1천182억원을 추징했다.
당시 조사에서는 자녀회사에 사업권을 저가 양도하거나, 우회거래를 통해 이익을 분여하는 편법 탈세 사례가 다수 적발됐다.
임환수 국세청 조사국장은 "국세청은 대재산가의 탈세가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치밀한 사전 계획 하에 지능적으로 이뤄짐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의 대재산가에 대해서는 재산 변동내역을 상시 중점관리하고 있다"며 탈세혐의분석이 이미 끝났음을 시사했다.
국세청은 대재산가 51명에 대해 위장계열사 설립, 부당내부거래, 지분 차명관리, 특정채권.신종사채 등을 통한 편법 상속·증여 행위를 중점 점검할 방침이다.
역외탈세혐의자 48명…조세피난처에 은닉한 고액재산 철저 검증
지하경제 대표 유형 가운데 하나인 ▶역외탈세혐의자 48명이 조사대상에 포함된 것도 주목할만하다.
현재 세무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37명에다, 4일 11명이 추가됐다. 11명은 거액의 재산을 조세피난처에 은닉하거나 해외 상속 재산을 신고 누락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세청은 지난해에도 역외탈세혐의자 202명을 조사해 8천258억원을 추징했으며, 이는 그동안 스위스와의 정보교환 등 국제공조와 해외정보수집에 주력한 결과물이다.
임환수 국세청 조사국장은 "소득을 해외에서 수취·은닉하고 해외발생소득과 해외금융계좌를 신고 누락하거나, 국내에 거주하면서도 신분세탁을 통해 비거주자로 위장해 어느 나라에도 세금을 내지 않는 역외탈세자를 더욱 철저하게 검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세청은 현재 이번 조사에 대비해 외국 정부로부터 거주자의 해외금융소득 자료를 수집해 정밀 분석 중이다.
대부업자 117명…사채자금 주가조작에 이용된 경우 관련인도 동시조사
특히 이번 조사대상자 가운데 ▶대부업자는 무려 117명으로 가장 많다. 이들은 불법 고리를 수취하면서도 차명계좌, 고액현금거래 등을 이용해 세금을 탈루한 혐의다.
국세청은 이번 조사에서 불법 사채자금이 주가조작, 불법 도박 등 또다른 지하경제 자금으로 활용된 경우 관련인까지 철저하게 동시조사할 방침이다.
또한 타인 명의로 사채업을 하는 명의위장사업자에 대해서는 금융거래 추적조사 등을 통해 실제 자금을 대여해 준 전주(錢主)까지 찾아내 탈루 소득을 환수키로 했다.
국세청은 지난해 이후 불법사채업자 등 대부업자 361명을 조사해 탈루세금 2천897억원을 추징한 바 있다.
임환수 조사국장은 "불법사채가 근절될 때까지 현장정보수집과 유관기관과의 공조를 더욱 강화하고 강력한 세무조사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종 사이버 지하경제…인터넷카페·해외구매대행업체 철저 조사
이번 조사에서 특이할 만한 또다른 부분은 ▶인터넷카페와 해외구매대행업체 8곳이 포함된 점이다. 국세청은 이들을 신종 사이버 지하경제로 지목하고 있다.
국세청은 최근 탈세혐의가 있는 주요 포털사이트의 최상위 인터넷카페와 해외구매대행업체에 대해 조사에 착수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스마트폰 등 IT환경 발전으로 인터넷 카페 회원수가 급증하자 공동구매·바이럴 마케팅(사용후기작성) 등을 통해 의뢰업체와 음성적으로 거래하면서 탈세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실제 ▷태아보험, 사진관, 돌잔치 업체 등을 바이럴 마케팅하면서 수수료를 신고누락하고, 인터넷카페 운영권을 수십억원에 주고받거나 ▷회원수가 100만명 이상인 카페에서 성형외과 등 공동구매를 주선하고 대가를 수수하면서 신고누락한 케이스도 발각됐다.
바이럴 마케팅은 사용후기 작성 등을 통한 마케팅으로 광고비용은 건당 100만원 내외이고, 주요 인터넷 카페의 공동구매 수수료는 제품 총판매가액의 10~25% 수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온라인 해외구매대행업체의 경우, 실질적인 수입판매업체 역할을 하면서 해외구매를 이유로 계좌이체 등 현금결제를 종용하고 부가세 등 세금을 탈루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세청은 지난해 4월 전자상거래를 전담하는 첨단탈세방지담당관을 신설, 현재까지 인터넷쇼핑몰 인터넷도박 등 전자상거래 관련 조사를 실시해 893억원을 추징했다.
임환수 국세청 조사국장은 "지하경제의 주범인 차명재산 은닉, 부의 편법 대물림, 역외탈세, 현금탈세, 가짜석유 불법유통, 고리 사채업, 인터넷 도박 등에 대해서는 국세행정 역량을 결집해 엄정하게 세무조사를 집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 조사국장은 이어 "다만 세무조사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납세자의 사생활 침해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국세기본법에 따라 개별납세자의 정보는 철저히 보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