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세협력비용의 감축을 통해서 납세순응도를 제고할 수 있다면 세율 인상을 하지 않고도 그리고 세무조사의 칼을 휘두르지 않아도 재정에 기여할 수 있으니 누이도 좋아하고 매부에게도 싫지 않을 것이다. 항상 선거를 염두에 두는 정치가들도 당연히 선호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 방향으로의 정책이나 제도는 쉽게 적정수준을 넘게 된다.
납세협력비용의 감축과 관련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적인 결과는 전자세정을 통해 가능했었다. 우리 국세행정은 전자세정과 국세정보통합관리시스템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변화를 보여줬다. 지금 정도의 인력으로 정부가 국세행정 분야에서 방대한 업무를 이행해나갈 수 있는 것은 전산시스템의 효율적 활용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세원관리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전자세정은 납세자들의 납세협력과정에서의 편의성을 도모함으로써 납세서비스 측면에서 기여한 바가 크다. 납세자들이 세무관서의 방문 없이 세무관련 업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납세협력비용을 크게 줄여주는 것이다.
인센티브를 부여해 납세 순응을 유도하는 제도로서 우리 과세당국이 자주 사용하는 수단은 성실납세자에 대한 세무조사 면제제도일 것이다. 성실납세제도는 적절한 세무통제기준을 갖춘 납세자와 과세당국이 협약을 체결하고 납세자가 협약에 따라 납세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면 국세청은 세무조사 등 세무간섭 없이 신고사항을 수용하는 제도이다. 이러한 성실납세제도는 세무조사제도 운용의 한가지 방식으로서 그 이론적 배경은 Greenberg이라는 학자의 연구에 기초한다. Greenberg은 납세자를 순응도 성향별로 3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해 세무조사에서 차등적으로 관리함으로써 세무조사제도 운영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다고 했다(김유찬, 세무조사제도의 문제점과 개편방안, 한국경제연구원, 2004). 차등적 관리는 이때 카테고리별 적정 세무조사비율의 결정, 탈세에 대한 처별 강도 등을 말하는 것이다. Greenberg의 이론에서는 납세순응도가 높은 납세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낮은 (혹은 거의 제로에 가까운) 세무조사대상 선정비율을 정하고 대신에 이 카테고리에서 탈세가 적발되면 바로 3번째 카테고리(거의 매해 세무조사 대상이 됨)로 가도록 분류함으로써 동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적 고려를 바탕으로 하여 우리는 우리나라의 성실납세제도가 위 Greenberg의 이론적인 컨셉을 잘 구현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납세순응도가 높은 납세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낮은 세무조사대상 선정비율을 정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성실납세제도는 Greenberg의 이론적 컨셉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카테고리에서 탈세가 적발되면 바로 거의 매해 세무조사 대상이 되도록 조처한다는 점이 이 제도가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게 하는 요소인데 이 점에서 우리나라의 제도는 문제를 노출시키고 있다.
한국조세연구원의 연구는 우리나라에서 세수 100원당 납세협력비용을 4.58원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 수준이 절대적으로 높은 수준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여러 가지 연구들에서 제시하는 납세협력비용의 감축방안들이 그다지 손에 잡히는 것이 없는 현실을 거꾸로 생각해 보면 그동안 전자세정 등의 정책과 여러 가지 노력을 통해 납세협력비용을 충분히 줄여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즉, 납세협력비용 감축은 이미 충분히 이뤄졌기 때문에 더이상 손에 잡히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은 납세순응도를 제고하는데 전통적인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즉, 세무조사 비중을 높이고, 탈세가 적발되는 경우 가산세 등 벌칙 규정을 강화하는 방식을 통해 납세순응도를 제고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선회돼야 한다. 최근에는 오히려 이러한 조치들이 사회적 동의를 얻어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기업의 투자나 고용 활성화에 대한 지원책으로 조세입법을 통해 세부담을 경감해 주는 것은 가능한 정책수단이 될 수 있으나 일정조건을 충족하는 기업에 대해 세무조사를 유예하는 것과 같이 세무행정의 수단인 세무조사를 정책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세무조사는 경제상황에 따라 시기적으로 변하지 않고 항상 일정하게 적용되는, 어떤 납세자도 의도적으로 피해가기 어려운 제도로서 자리잡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그래야만 제도적 공공재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또한 한번 시작된 세무조사는 담당자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여유가 주어져야 한다. 현재 국세청은 세무조사 기간을 좁게 잡도록 하면서 조사기간 연장을 납세자보호위원회로 하여금 매우 제한적으로만 허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납세자에게 세무조사의 심리적·경제적 부담을 덜어줘 기업활동에 전념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좋은 취지를 갖는 것이나, 동시에 세무조사 담당자들의 통상적인 업무를 어렵게 한다는 점이 문제로 부각된다. 성실납세자에 대한 가장 좋은 납세서비스는 불성실납세자에 대한 엄정한 세무조사이다. 국세청의 효율적인 세무조사를 어렵게 하는 이러한 제도적 운영이야말로 포퓰리즘적 행태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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