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대인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돈에 대한 갈증, 일에 대한 집착, 비인간화된 물질주의 등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돈과 관련된 것은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모든 걱정과 근심 그리고 스트레스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도 볼 수 있을 정도이다. 부자는 돈이 많아서 가난한 자는 쓸 돈이 없어서 더욱 그러하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없을까? 법정스님께서 말씀하신 '무소유'적 사상이라면 모르겠지만, 하루하루의 삶을 걱정해야 하는 대다수 평범한 서민들이야 어디 그리 쉽겠는가.
2. 그렇지만 그렇게 살아보려고 애를 썼던 공동체가 많이 있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이다. 성서에 따르면(사도행전 2:44-45) 그들은 공동체 구성원에게 '필요한 대로 나눠줬다'라고 기록돼 있다. 즉 내가 1천만원이 필요하면 1천만원을 지급받는 것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약간의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당시 사회의 긴박성이 이를 가능케 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형당하고 부활승천하면서, '내가 하늘에 올라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가겠다'는 약속을 하자(요한복음 14:4)', 그 말씀을 믿었던 자들이 자기 재산을 다른 사람의 필요를 위해 사용하게 된 것이다.
3. 아니 곧 하늘로 올라간다는데 땅위의 재산에 대한 집착이 필요했겠는가. 현대에도 이처럼 '각 사람이 필요한 대로 나눠줄 수 있는 경제시스템'이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최근 전직 총리가 초과이익 공유제를 제안하자, 某그룹의 총수가 그런 용어는 경제학교과서에도 없다고 하면서 비난을 했다. 내가 번 돈인데 이를 공유해? 이들의 공격무기는 사회주의적 발상, 좌파적 사고였다.
초과이익 : 회사구성원 몫
4. 그러나 가만 생각해 보면 그토록 비난받을 일인가? 기업의 초과이익이 어찌 그룹 총수나 자본가의 노력으로만 된 것이겠는가? 그룹 리더의 경영노력과 자본가의 투자위험도 있지만 종업원의 피와 땀도 있고 하청업자의 고생도 있으며, 소비자들의 구매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이러한 초과이익이 발생하면 연말에 경영자는 임원과 종업원에게 두둑한 상여금을 주고 자본가는 정상적인 이자보다 더 많은 배당을 가져가는 것이다. 나름대로의 초과이익 공유방법이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세금을 내느니 보다는, 차라리 종업원에게 상여금을 주면, 법인세도 덜 내고 구성원 사기도 올라가는 등 일석이조 이상의 효과가 있으리라.
초과이익 : 하청업체 몫?
5. 그런데 하청업체의 몫은 없는 것인가? 기업은 하청업체에게 적정한 이윤을 보장해 주고 있기 때문에 초과이익을 공유할 수 없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청업체의 기여 없이 어떻게 초과이익이 발생하겠는가. 휴대폰이나 자동차의 수많은 부품을 하청업체에게 의존하고 있는 현실, 파견근로제, 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등을 감안해 봐도 초과이익 중 일부는 하청업체의 몫이 될 수 있다. 마침 MB정부의 '동반성장'정책 기조 하에 전직 총리가 그 초과 이익 중 일부를 하청업체와 공유했으면 하는 발언을 했다고 본다.
초과이익 : 소비자 몫은 없는가?
6. 그러나 한 발 물러나 초과이익 공유대상이 왜 그 회사 소속의 임직원이나 납품업체에 국한돼야 하는가 하는 곳에 미치면 그리 간단하게 넘길 일이 아닌 것이다. 소비자가 구매를 해줬으니 이익이 남았을 것 아닌가? 소비자의 몫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결국 이 문제의 '종결자'는 세금이라고 본다. 남은 이익의 상당 부분을 세금으로 흡수해 불특정 다수인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 법인세를 제대로 내고 있는데 무슨?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7. 그러나 현 상황에서 국민경제가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면 MB정부가 친서민정책이니 동반성장이니 이런 소리를 안했을 것이다. 이들 정책을 수행하려고 하니 정부의 재원이 부족한 것 아니겠는가.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초과이익 중 일부인 소비자의 몫을 세금으로 환수할 필요가 있으며 그런 점에서 MB정부의 감세정책은 단견일 수밖에 없다. 법인세 인하는 재고돼야 한다.
공정과 공평의 차이
7. 법정스님의 무소유 주장을 왜곡해 결국 소유하지 않을 것이니 아예 돈을 벌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본질과 동떨어진 것이다. 열심히 벌어서 사회에 좋은 일 하라는 것 아니겠는가?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모든 재산을 기부하라고 했던 것도 마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내가 번 돈인데 웬 공유? 라는 생각은 공정(公正)한 사고일 수 있다. 반면 사회 구성원의 형편에 맞게 사용돼야 한다는 것은 공평(公平)의 생각이라고 본다. 자식에게 유산을 똑같이 나눠 주는 것과 못살고 부족한 아이에게 더 나눠 주는 것과의 차이이다. 이런 것이 경제학 교과서에 나올까? 그리고 나왔다면 그대로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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